김옥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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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윤
金玉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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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 영부인 | |
임기 | 1956년 8월 15일 ~ 1960년 4월 25일 |
대통령 | 이승만 |
부통령 | 부군 운석 장면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01년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종로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
사망일 | 1990년 1월 27일 (향년 90세)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장면 |
자녀 | 6남 3녀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
김옥윤(金玉允, 1901년 ~ 1990년 1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제4대 부통령 및 제2, 7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면의 아내이다.
생애
[원본 편집]독실한 가톨릭 신앙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장면과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장면과의 사이에 6남 3녀를 두었다.
5·16 군사 정변 관련
[원본 편집]족청계 쿠테타 설을 접한 김옥윤은 왕년의 족청계 지도자인 이범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의 집안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김옥윤이 그 설을 듣고 소문 확인 차원에서 안부 전화를 겸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이범석은 자신을 의심하는 것에 대해 벌컥 화를 냈다. [1][2]
지금 세상에 족청계가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네들 이젠 정권을 잡으니 족청의 망령까지도 때려잡지 못해 안달이오?[1][2][3]
몇 차례 안좋은 말이 오고 가다가 김옥윤은 이범석의 인격을 문제 삼았고, 이범석은 '여편네' 운운하면서 언쟁을 벌였다.[3][2]
가계
[원본 편집]- 남편 : 장면(張勉, John Myun Chang, 1899년 8월 28일 ~ 1966년 6월 4일)
- 첫째 아들: 장영(張英, 1920년 7월 2일 ~ 1922년 음력 4월 6일)
- 둘째 아들: 장진(張震, 요셉, 1927년 2월 10일 ~ 2011년 9월 30일, 서강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 며느리 : 김종숙(베로니카, 1934년 ~ )
- 셋째 아들: 장건(張建, 1932년 2월 26일 ~ , 미국 거주)
- 넷째 아들: 장익 (張益, 십자가의 요한, 1933년 11월 20일 ~ 2020년 8월 5일, 로마 가톨릭 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 다섯째 아들: 장순(張純, 1935년 10월 17일 ~ , 미국 보스턴 리지스대학교 정치학 교수, 미국 거주)
- 여섯째 아들: 장흥(張興, 1939년 9월 20일 ~ , 벨기에 루벵 대학 철학박사, 파리은행 은행원, 프랑스 거주)
- 첫째 딸: 장명숙(張明淑, 안나, 1918년 8월 10일 ~ 1919년 8월 2일)
- 둘째 딸: 장의숙(張義淑, 베네딕타, 1930년 2월 21일 ~ 로마 가톨릭 수녀, 미국 거주)
- 셋째 딸: 장명자(張明子, 데레사, 1941년 10월 3일 ~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빌라노바대학교 도서관학 석사)
기타
[원본 편집]김옥윤은 미국이 5·16 군사 정변을 알고도 묵인했고, 남편 장면이 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의 신분을 알면서도 미국이 일부러 방조했다고 주장하였다.
같이 보기
[원본 편집]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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