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스웨덴 관계
보이기
대한민국 |
스웨덴 |
---|---|
외교 공관 | |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 | 주한 스웨덴 대사관 |
대한민국과 스웨덴은 1959년에 수교하였다. 이때, 스웨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수교하였다. 스웨덴은 한국 전쟁 때에는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야전병원선을 파견한 바 있다. 대한민국은 스톡홀름(주 라트비아 대사관 겸임)에, 스웨덴은 서울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모두 2,050 명(재외국민 922 명, 시민권자 1,128 명)의 한민족들이 스웨덴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1]
정무
[편집]대수 | 이 름 | 임기 | 비고 |
---|---|---|---|
1 | 유재흥(劉載興) | 1963. 8 ~ 1967. 9[3] | |
2 | 강문봉(姜文奉) | 1967. 9 ~ 1971. 8[4] | |
3 | 방희(方熙) | 1971.11 ~ 1972.12 | |
4 | 채명신(蔡命新) | 1972.12 ~ 1973.11 | |
5 | 장상문(張相文) | 1973.11 ~ 1975. 8 | |
6 | 김세원(金世源) | 1975. 8 ~ 1978. 5 | |
7 | 윤하정(尹河珽) | 1978. 5 ~ 1980. 4 | |
8 | 강영규(姜永奎) | 1980. 4 ~ 1983. 1 | |
9 | 이창수(李昌洙) | 1983. 2 ~ 1986. 3 | |
10 | 이연채(李延彬) | 1986. 3 ~ 1989. 2 | |
11 | 최필립(崔弼立) | 1989. 2 ~ 1990. 2 | |
12 | 최동진(崔東鎭) | 1990. 2 ~ 1992.12 | |
13 | 이시용(李時容) | 1992.12 ~ 1993. 5 | |
14 | 채의석(蔡義錫) | 1993. 5 ~ 1995.12 | |
15 | 이창범(李昌範) | 1996. 2 ~ 1998. 8 | |
16 | 손명현(孫明鉉) | 1998. 8 ~ 2001. 2 | |
17 | 금정호(琴正鎬) | 2001. 2 ~ 2003. 7 | |
18 | 정영조(鄭榮助) | 2003. 7 ~ 2005.12 | |
19 | 이준희(李浚熙) | 2005.12 ~ 2008. 5 | |
20 | 조희용(曺喜庸) | 2008. 5 ~ 2011. 3 | |
21 | 엄서정(嚴錫正) | 2011. 3 ~ 2013. 6 | |
22 | 손성환(孫聖煥) | 2013. 6 ~ 2015. 10 | |
23 | 남관표(南官杓) | 2015. 10 ~ 2017. 6 | |
24 | 이정규(李汀圭) | 2017. 6 ~ |
문화
[편집]여러 도서관과 박물관·미술관에는 한국과 관련된 도서와 유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스톡홀름 대학교에서는 한국학을 연구한다. 1926년 황태자였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재위 1950-1972)가 경주를 방문해 봉총(鳳塚)의 발굴을 참관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서봉총(瑞鳳塚)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5]
2019년에는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위키갭 에디터톤 등 여러 행사가 개최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2012년 5월 26일에 원본 문서 (엑셀)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2월 25일에 확인함.
- ↑ 외교통상부. 〈부록〉. 《한국 외교 60년》 (PDF). 2016년 3월 3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2월 21일에 확인함.
- ↑ “瑞典大使에- 劉載興씨任命”. 경향신문. 1963년 8월 7일.
政府는 7日字로 劉載興 駐泰國大使를 駐「쉬든」大使로 轉任發令했다. )
- ↑ “12國大使任命의결”. 동아일보. 1967년 9월 16일.
國務會議는 16일 駐美•駐英•駐日•駐獨大使를 포함해서 12개國駐在大使를 새로 任命키로 議決했다. 이날 議決된 大使級의 大幅移動은 朴大統領의 決裁가 나는대로 月內에 發令케 되었다. … ▲駐 瑞典大使〓姜文奉(44•國會議員 )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스웨덴"을 한자어로 표기하면 서전(瑞典) 이고, 여기서 "서(瑞)"를 따왔다. “千餘点陳列 發掘된 新羅古蹟”. 동아일보. 1926년 11월 25일.
그 중요한 유물이라는 것은 얼마전 서전(瑞典) 황태자 전하에게도 뵈여드린 서봉총(瑞鳳塚)으로부터 발굴한 봉황(鳳凰)의 아로새긴 금관을 비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