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레인저 대대
6th Ranger Battalion6 레인저 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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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레인저 대대의 어깨 소매 기장 | |
활동적인 | 1942–1945 |
나라 | 미국, |
나뭇가지 | 미국 육군 |
유형 | 경보병 특수작전부대 |
역할 | 직접 작용 정글전 습격 정찰 특수작전 |
크기 | 대대 |
계약 | 제2차 세계 대전 |
지휘관 | |
주목할 만한 지휘관들 | 중령 헨리 무치 |
제6차 레인저 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작전을 보았던 미 육군 레인저 대대였다. 이 대대는 1945년 1월 필리핀 카바나투안에서의 공습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1]
98 야전 포병 대대
제6 레인저스 역사는 노새가 끄는 포병부대인 제98 야전포병대대에서 시작된다. 제98 야전 포병대는 1942년 콜로라도주 캠프 카슨에서 제임스 M. 캘리컷 중령의 지휘 아래 결성되었다. 1942년 12월, 이 대대는 호주 브리즈번으로 진군했으나, 호주의 동물 수입법 때문에 이 대대는 뉴기니로 방향을 바꾸어 1943년 2월 17일 포트 모레스비에 도착했다.
그 대대는 그 후 12개월을 훈련으로 보냈지만 전투는 보지 못했다. 1943년 2월 미 6군은 이 대대가 구식이라고 판단하고, 제1 기병사단으로 이양된 부대 지휘관은 물론 부대의 800여 노새를 제거했다. 이 대대의 새 사령관은 헨리 A 중령이었다. 무치.[2] 노새와 포병 및 노새 스키너들 중 일부는 버마의 5307 복합 부대(임무)로 이송되었다.[3][4]
레인저 훈련
무치는 하와이에서 레인저 훈련 기술을 사용하는 훈련 캠프를 이끌었다. 그는 그 대대가 야전포병에서 레인저스로 전환되고 있다고 발표했고, 1000명에서 500명으로 축소되었다. 포병장교들 중 일부는 전출되어 보병과 공병장교로 대체되었다.
전환과 훈련이라는 과제가 1년 넘게 걸렸지만 1944년 7월경에 완성되었다. 이 대대는 뉴기니의 핀슈하펜으로 이관되어 레인저 대대로 재편성되어 제6 레인저 보병 대대로 재설계되었다.
필리핀 전역
6번 레인저스는 필리핀 침공을 지휘할 예정이었다. 대대는 1944년 10월 10일 핀샤펜을 떠나 필리핀 레이테로 향했다. 레이테 만 입구에 위치한 디나가트 섬, 호모논 섬, 술루안 섬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섬들은 일본군에 남아 있으면 6군단의 상륙작전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악천후로 인해 처음 지연된 후, 10월 18일에 작전이 진행되었고, 성공적이었다. 디나가트의 6번째 레인저스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필리핀으로 돌아가다'[5]의 일환으로 필리핀 땅에 최초로 미국 국기를 게양했다.
이 임무가 성공한 후 1944년 10월 20일 레이테의 침공이 진행되었다. 6번 레인저스는 레이테의 타클로반으로 이동했는데, 주로 순찰 활동에 사용되었다. 그해 말, 루손의 침공을 형성하는 링가이옌만의 상륙작전에 참가할 준비를 대대에게 명령했다. 1945년 1월 1일, 레인저스는 타클로반에서 링가옌만으로 해상으로 수송되었고, 1945년 1월 10일 링가옌만 해변에 상륙했다. 대대의 원소를 산티아고 섬으로 보내 걸프만 입구를 확보하고 적군이 상륙지점을 앞지르는 것을 막았다.[6]
카바나투안 급습
제6군 정보국은 일본인들이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60마일 떨어진 카바나투안 지역에 많은 미군 포로들을 억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팔라완의 한 야영지에서 일어난 사건은 정보기관으로 하여금 일본 제국군이 후퇴하면서 포로들이 처형될 것이라고 믿게 했다. 6군 사령관 월터 크루거 장군은 6군단에게 "포로를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C 회사, 캡틴 아래. 로버트 프린스, F 사의 소대로 보강되고 대령과 동행한다. 무치, 그 임무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알라모 정찰대와 필리핀 게릴라들이 제6 레인저 부대에 동행해 정찰과 측면 보호를 제공했다. 공격은 1월 30일 황혼 무렵에 진행되었다. 이 전투 동안 레인저스는 511명의 포로들을 구출했고 523명의 적군을 죽이거나 부상시켰다.[7] 대피 과정에서 레인저 2명이 숨지고 죄수 2명이 숨졌으며 필리핀 게릴라 21명이 부상했다. 무치와 프린스 모두 공로십자를 받았고, 은성 급습에 관련된 모든 장교들과 청동성 사병들도 모두 받았다. 이 작전은 여전히 미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구조 작전 중 하나로 여겨진다.[8]
급습 후
루손 전투의 남은 기간 동안 6차 레인저스는 장거리 정찰 정찰, 일본 저항의 우회 주머니를 걸레질, 6군 사령부 경비대 등 다양한 소규모 임무를 수행했다. 6월 23일, 그들은 11 공수 사단 낙하산 부대와 글라이더 부대로 구성된 기동대 집시의 도착에 대비하기 위해 아파리 마을 근처의 비행장을 점령했다. 그 후 레인저스는 남쪽으로 밀고 나가 37사단과 연계하여 전쟁의 마지막 주요 작전을 마무리했다.[9]
전쟁이 끝난 후, 제6 레인저 대대는 점령 임무를 위해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 대대는 1945년 12월 30일 해체되었고, 대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부대에 배치되었다.[10]
참조
- 메모들
- ^ "U.S. Army Rangers History & Heritage". U.S. Army. Retrieved 14 February 2017.
- ^ Sides, Hampton (7 May 2002). Ghost Soldiers: The Epic Account of World War II's Greatest Rescue Mission. Anchor Books. pp. 25–26. ISBN 978-0385495653.
- ^ http://www.marauder.org/yank110.htm
- ^ McNab, Chris America's Elite: 미국 혁명부터 현재의 블룸스베리 출판까지 미국 특수부대, 2013년 3월 20일
- ^ Anderson, Charles R. "Leyte".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Retrieved 14 February 2017.
- ^ Strausbaugh, Leo V. (Winter 2005). "The 6th Ranger Battalion" (PDF). Patrolling. Vol. 20 no. 3. United States: 75th Ranger Regiment Association, Inc. p. 76.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31 December 2016. Retrieved 14 February 2017.
- ^ King, Michael J. (June 1985). "Rangers: Selected Combat Operations in World War II". Leavenworth Papers.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70–71. ISSN 0195-3451.
- ^ "Daring World War II raid saved Houston man's life". Lubbock Avalanche-Journal. Associated Press. 13 August 2005. Retrieved 14 February 2017.
- ^ Hogan, Jr., David W. (1992). U.S. Army Speci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p. 88.
- ^ 스트라우스보, 페이지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