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리토리아

Ala Littoria
알라 리토리아
Ala littoria.svg
설립됨1934
중지된 작업1945
운영 베이스리토리오 공항
모회사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정부
본부이탈리아

알라 리토리아 S.A.는 1930년대와 1940년대 파시스트 정권 때 운항한 이탈리아 국적 항공사였다.[1]

역사

알라 리토리아의 사보이아 마르체티 S.74

알라 리토리아는 1934년 소시에타 아에레아 메디테레아나(SAM), 소시에타 아노니마 네비게오네지오네게아(SANA), 소시에타 이탈리아인 세르비지 에레이(SISA), 에어로 에스프레소 이탈리아인(AEI)의 합병으로 결성되었다.

이 항공사는 이탈리아 정부의 소유였으며 주로 이탈리아 국기를 항공기에 실었다.그것은 또한 일부 경로에서 파시즘의 상징을 보여주었다.

이 항공사는 사보이아마르체티에서 온 최첨단 항공기를 주로 사용했지만 1930년대 후반에는 다른 이탈리아 항공기(예: "브레다"와 "카프로니")가 사용되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상업 비행은 1923년에 시작되었지만,[2] 무솔리니파시즘의 '파시 리토리'와 관련된 이름으로 추진한 '알라 리토리아'로만 국제 정식 취항했다.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이 민간 항공의 초기 단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탈리아는 처음에는 적은 수준의 승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몇몇 소규모 회사를 설립했다.그 중 첫 번째는 1923년 12월 12일에 설립된 Aero Expresso Italiana(AEI)로, 1926년 8월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1930년경에는 소시에타 이탈리아인 세르비지 에레이(SISA), 소시에타 지역 네비오네지오네바다인 에레아(SANA), 소시에타 지역 메디테라니아인(SAM), 소시에타 지역 아비오라인네 이탈리아인(ALI) 등 5개의 다른 이탈리아 항공사가 있었다.이러한 초기 이탈리아 항공 서비스는 거의 모두 국유 또는 국가가 지원했다.유일한 주요 예외는 자동차 건설국인 강력한 피아트 산업 제국이 뒷받침한 ALI이었다.3대 항공사인 SISA, SANA, SAM은 1930년까지 연간 약 1만 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탈리아 민간 항공 시장을 균등하게 분할했다.1925년에 이탈리아인들이 민간 항공 분야를 거의 갖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면, 1930년까지 그들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알라 리토리아"가 만들어졌을 때)실제로 1930년 이탈리아의 상업항공은 여객수 기준으로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3위, 영국과 네덜란드를 앞섰다.[3]

1934년에 Ala Littoria는 확대되었고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들과 또한 동부 지중해 지역을[4] 향해 몇몇 비행을 시작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 알라 리토리아는 LAPE의 소멸에 따라 설립된 스페인 항공사 이베리아에 투자했다.알라 리토리아는 항공사의 12.5%를 인수하고 루프트한자로부터 엔진이 없는 융커스52 에어프레임 3대를 구입해 자본금 대신 이베리아에 주었다.[5]

리나 델림페로 항공기
Savoia-Marchetti SM.75.jpg
알라 리토리아의 사보이아 마르체티 SM.75 "마르슈피알레"

알라 리토리아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이탈리아 식민지를 가로질러 목적지로 날아갔다.1934년 로마에서 이탈리아 소말리아의 모가디시오로 가는 실험 비행이 행해져 장거리 민간 비행에 관한 세계 기록을 수립하고 이듬해인 1935년에 명망 있는 리나 임페로를 출발시킬 수 있었다.[6]

임페리얼 노선제2차 세계대전 전 해에 알라 리토리아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긴 노선으로 당시 이탈리아 항공 노선 중 가장 권위 있는 노선으로 여겨졌다.[7]로마와 이탈리아 동아프리카의 모가디시오를 연결했고, 1939년부터는 최첨단 사보이아 마르체티(민간인) SM 75로 비행기 변경[8] 없이 노선이 이동할 수 있었다.[9]

1938년 3월 항공사는 로마-카글리아리-바스튀르스트/감비아-바히아-리오 데 자네이루-부에노스아이레스 노선으로 로마에서 아르헨티나로 가는 최초의 기록적인 비행을 하였으며,[10] 이후 칸 Z 506 모델의 특수 수력비행기를 이용하였으나, 이후 새로 만들어진 라틴 아메리카 항공편 LATI로 대체되었다.

1940년 알라 리토리아 노선은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3만7,110km까지 성장했다.이로써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항공노선(미국, 소련, 독일, 영국에 이어)을 갖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알라 리토리아는 이탈리아 군대의 수송 서비스 역할을 했다.그러나 그 항공사는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해체되었다.1946년 9월 16일 '에롤리네 이탈리아인 인테르나지오날리'로 제정된 알리탈리아인 리네 아이리 이탈리아인이 전쟁 후 대체하였으며, 이후 알리탈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결된 공항

1940년에 Ala Littoria는 다음과 같은 공항에 도착하여 연결했다.

이탈리아

  • Alghero, Ancona, Bologna, Brindisi, Cagliari, Catania, Fiume (at that time Italian territory), Genoa, Lussino (at that time Italian territory), Milan, Naples, Palermo, Pola (at that time Italian territory), Rimini, Rhodes, Rome, Syracuse, Trapani, Trieste, Venice, Zara (at that time Italian territory).

이탈리아 북부 및 동부 아프리카

  • 아디스아바바, 아스마라, 마사우아, 아사브, 데시에, 디레다와, 감벨라 뎀비돌로, 김마, 곤다르, 고르헤이, 레켐트아소사, 모가디슈, 넬레, 벵가지, 트리폴리.

유럽

  • 아테네, 바르셀로나, 베오그라드, 베를린, 부쿠레슈티, 카디즈, 콘스탄차, 리스본, 말라가, 몰타, 마르세유, 뮌헨, 팔마, 파리, 테살로니키, 세빌, 티라나, 비엔나.

중동과 아프리카

  • 바그다드, 바스라, 카이로, 지부티, 하이파, 하르툼, 멜릴라, 테투안, 튀니지, 와디 하파.

비행기

1940년에 알라 리토리아의 함대는 39대의 시플란트와 74대의 지뢰를 포함했다.

항공사의 사보이아마르체티 S.66 수상기.
알라 리토리아의 사보이아마르체티 S.M.75

시플레인스

비행기

사고 및 사건

치명적인 사고

  • 1936년 9월 24일, 캔트 Z.506 I-RODI가 엔진 화재에 이어 배 돛대에 부딪혀 리비아 벵가지에서 추락해 탑승자 10명 중 9명이 사망했다.[11]
  • 1937년 8월 2일, 사보이아-마르체티 S.73 I-SUSA는 수단의 와디 하파 공항에 접근하던 중 추락하여 탑승자 9명 전원(6팩스, 승무원 3명)이 사망했다.승무원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접근하지 못했으나, 그 후 항공기가 멈춰서 추락했다.[12]
  • 1938년 2월 13일, CANT Z.506 I-ORIA는 좋지 않은 날씨 속에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추락하여 기내에 있던 14명 전원이 사망했다.[13]
  • 1938년 4월 30일 사보이아 마르체티 S.73 I-MEDA가 운용하는 파이트 422는 티라나에서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추락했다.항공기가 마라놀라 인근 산악지대를 들이받아 탑승자 19명 전원이 숨졌다.[14][15]
  • 1938년 7월 14일 사보이아-마르체티 S.66 I-VOLO는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테라노바 근해 91mi 떨어진 지중해에서 추락해 탑승자 20명 전원이 사망했다.[16]
  • 1938년 11월 22일 사보이아-마르체티 SM.75C I-TUON은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한 후 악천후 속에 오스트리아 윙클렌 인근에서 추락해 탑승자 5명 중 4명이 사망했다.[17]
  • 1939년 10월 17일, I-IESI일 가능성이 있는 사보이아 마르체티 S.73이 스페인 올리아스 근처에서 언덕을 들이받고 추락해 탑승자 17명 중 15명이 사망했다고 한다.[18]이 항공기 유형은 신문 보도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S.73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 1939년 12월 4일, 뮌헨베를린 사이의 악천후 속에서 비행하던 융커스52/3mlu가 약 1000m(3281피트)의 고도에서 독일 바이에리스치 아이젠슈타인 인근 산비탈을 들이받고 추락해 탑승자 17명 중 4명이 사망했다.[19]
  • 1940년 2월 10일, 사보이아 마르체티 SM.75 I-LEAL은 이탈리아 아이엘로 칼라브로의 숲이 우거진 산허리를 강타해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20]
  • 1940년 5월 16일, 사보이아-마르체티 SM.75 I-LUPI가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이륙 중 추락하여 탑승자 8명 전원이 사망했다.화물칸에 보관된 사다리가 움직여서 조종장치가 걸렸다.[21]
  • 1941년 7월 30일, Macchi M.C.100 I-PACE가 리도 디 오스티아 시플레인 기지에서 추락하여 승무원들이 엔진 문제로 돌아오려다가 기내에서 25명 중 5명이 사망했다.[22]
  • 1942년 11월 23일, 사보이아-마르체티 SM.75 I-MAGA가 지중해에 추락하여 탑승자 4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항공기는 아마도 격추되었을 것이다.[23]

비운명사고

  • 1939년 10월 13일, Caproni Ca.133 I-DIOR는 엔진 고장으로 지부티의 가보드에 추락했다; 탑승한 6명 모두 살아남았다.[24]
  • 1941년 1월 17일 사보이아 마르체티 SM.75 I-LUME는 폰타나로사 공항에 착륙하던 중 추락했다.이륙한 지 30분 후 오른쪽 엔진에 불이 붙자 항공기가 공항으로 돌아왔다.착륙 도중 루프트와페 융커스 주 88대 2대를 들이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탑승한 17명 모두 항공기가 소실되기 전에 탈출할 수 있었다.그 비행기는 군용 비행을 하고 있었다.[25]

참고 항목

참조

  1. ^ 카프로티 F(2011) '수익성, 실용성 이념: 파시스트 민간 항공과 알라 리토리아의 짧은 생애, 1934–1943.'운송 역사 저널, 32(1) 페이지 17–38.
  2. ^ 항공 운송의 탄생
  3. ^ 세기 비행:이탈리아 공무원
  4. ^ 프랑스 및 기타 국가로 가는 항공편 시간표
  5. ^ 베를린-스팟터 – 이베리아(독일어)
  6. ^ 로마-모가디시오 비행에 대한 원본 기사(확대하려면 클릭)
  7. ^ 로셀리:이탈리아와 이탈리아 아프리카 사이의 항공 연결선
  8. ^ 알라 리토리아 시간표 1938년 3월 28일 ("Lina dell'Impero")
  9. ^ Savoia Marchetti SM 75, 민간 버전
  10. ^ 알라 리토리아, 1934–1941년(이탈리아어)
  11. ^ 항공안전망에서의 I-RODI 사고해석
  12. ^ 항공 안전 네트워크:사고 설명
  13. ^ 항공안전망 I-ORA 사고해석
  14. ^ "The Italian Disaster", Flight, p. 442, 5 May 1938, retrieved 3 May 2011
  15. ^ http://www.flightglobal.com/pdfarchive/view/1938/1938%20-%201258.html?search=the 이탈리아 재난
  16. ^ 항공안전망I-VOLO 사고해석
  17. ^ 항공안전망I-TUON 사고해석
  18. ^ 항공안전망I-IESI 사고해석
  19. ^ 항공 안전 네트워크: 사고 설명 - 이 데이터베이스 기록의 오류: 출발/목적 공항이 변경되거나(베를린 대 뮌헨), 사고가 1차 구간( 이륙 후)에서 발생했으며, 이 기록은 "항공 안전 네트워크"에서 현재 나타내고 있다.
  20. ^ 항공안전망 I-LEAL의 사고해석
  21. ^ 항공안전망 I-LUPI의 사고해석
  22. ^ 항공안전망 I-PACE의 사고해석
  23. ^ 항공안전망 I-MAGA의 사고해석
  24. ^ 항공안전망 I-DIGHT의 사고해석
  25. ^ 항공안전망I-LUME 사고해석

외부 링크

  • [1] 아에로포르토 포르텔라 리스본 1943?, 알라 리토리아 사보이아 마르체티, 루프트한자 DC-3
  • [2] 아에로포르토 포르텔라 리스본 1943?, I-BU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