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리오 테루치
Attilio Teruzzi아틸리오 테루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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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프리카의 장관 | |
재직중 1939년 10월 31일 – 1943년 7월 25일 | |
수상 | 베니토 무솔리니 |
선행자 | 베니토 무솔리니 (iii) |
성공자 | 멜키아데 가바 |
키레나이차 주지사 | |
재직중 1926년 12월 2일 – 1928년 12월 31일 | |
선행자 | 에르네스토 맘벨리 |
성공자 | 피에트로 바다글리오 |
개인내역 | |
태어난 | 1882년 5월 5일 밀라노 |
죽은 | 1950년 4월 26일 프로시다 | (67세)
국적 | 이탈리아의 |
정당 | 전국 파시스트 정당 |
아틸리오 테루치(Attilio Teruzi, 1882년 5월 5일 ~ 1950년 4월 26일)는 이탈리아의 군인, 식민지 행정가, 파시스트 정치인이었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테루찌는 군사학을 마치고 28세의 유별난 나이에 이탈리아 육군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1911년 이탈로-투르크 전쟁 중 리비아에서 복무하여 미스라타(미스라타)에서 승리에 참가했다. 그는 후에 날루트를 포로로 잡았고, 페잔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군용 발레의 은메달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복무한 후(다시 훈장을 받았을 때), 테루지는 파시스트 정치에 관여하기 위해 1920년에 군대에서 휴가를 얻었다. 그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 당과 1921년 당의 부비서관이기도 한 그는 에밀리아-로마냐 출신의 블랙셔츠 부대장으로서 로마에서의 행진에도 참가했던 해였다. 파시스트 인수 후 테루치는 1924년 이탈리아 하원의원에 선출되어 연임했다.
1925-26년 내무부 차관이었던 테루치는 1926-28년 키레나이카 주지사로 있다가 군으로 복귀했다. 그는 1935년 MVSN(블랙셔츠에 의해 형성된 밀리지아)의 참모총장을 지냈고,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이탈리아 아프리카부(리비아와 이탈리아 동아프리카),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십일조 장관을 지냈다. 스페인 남북전쟁 때 테루찌는 중장으로 진급해 블랙셔츠의 감찰총장을 임명했다.
무솔리니가 축출하고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을 떠난 후 - 1943년 7월 말 카시빌레에서의 휴전을 통해, 테루찌는 나치가 후원하는 북이탈리아에서 일두스를 따라다니며, 파시스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또한 가장 권위 있는 군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1945년 정권이 붕괴되면서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대신 그는 프로시다에 포로가 되었다. 그는 해방 후 며칠 만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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