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넬리스 시저
Cornelis Caesar코넬리스 시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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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포모사 주지사 | |
재직중 1653년 5월 24일 – 1656년 6월 30일 | |
선행자 | 니콜라스 베르부르크 |
성공자 | 프레데릭 코예트 |
개인내역 | |
태어난 | c. 1610년 간다, 네덜란드 |
죽은 | 1657년 10월 5일 바타비아 |
국적 | 네덜란드어 |
아이들. | 마르티누스 카이사르 |
코넬리스 카이사르(C. 1610–1657)는 네덜란드 상인이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관리로, 1653년부터 1656년까지 포모사 주지사를 지냈다.[1]
초기 경력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입사한 후, 카이사르는 1629년 바타비아에 첫 직위를 하기 위해 도착했다.[2] 아시아에서의 첫 주문 동안 그는 키남, 히라도, 그리고 마침내 타유안(네덜란드 포르모사의 수도)에서 일했고, 최고 상인(operkoopman)으로 승진했다.[2] 1641년 그는 히라도에서 또 한 명을 차지하기 위해 포모사에서의 직책을 사임했지만, 도중에 네덜란드인은 일본 정부에 의해 인공섬인 데지마로 공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2] 그의 작품은 그를 다시 포모사로 데려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적(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루손 서쪽 해안에 군사 행동을 명령했다. 1647년에 그는 휴가를 요청했고, 그것은 허가되었다. 그리고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왔다.[2]
포르모사 주지사
1651년 아시아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바타비아에 주둔했다. 니콜라스 베르부르크가 1653년 포모사에서 소환될 당시 카렐 하트신크가 섬의 주지사로 취임할 예정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르트신크의 후원자인 카렐 레이니어스 총독은 그해 4월 18일 사망했는데, 후임 총독은 포모사의 새 총독으로 카이사르를 선호했다.[2] 카이사르는 5월 24일에 취임하여 11번째 네덜란드 식민 통치자가 되었다. 1656년 6월 30일 마지막 주지사가 될 프레드릭 코예트에 의해 안도하며 3년간 재임하였다. 카이사르는 바타비아로 돌아와 1657년 10월 5일 사망하였다.[2]
메모들
참조
- "Caesar, Cornelis". Nieuw Nederlandsch biografisch woordenboek. Retrieved July 13, 2009.
- Andrade, Tonio. How Taiwan Became Chinese. Gutenber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