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계 칠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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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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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추정치: | |
모집단이 유의한 지역 | |
칠레 전역 | |
언어들 | |
칠레 스페인어, 프랑스어, 바스크어, 서양어 | |
종교 | |
주로 로마 가톨릭교회 | |
관련 민족 | |
프랑스인 |
프랑스계 칠레인(프랑스어: Franco-Chilien, 스페인어: Franco-chileno)은 전체 또는 부분적인 프랑스 조상의 칠레 시민이다. 1840년에서 1940년 사이에 2만에서 2만 5천 명의 프랑스인들이 칠레로 이민을 왔다. 남미 프랑스 이민자는 아르헨티나(23만9000명), 브라질(15만341명), 우루과이(2만5000명 이상)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프랑스의 칠레 이민
프랑스는 18세기에 칠레에 와서 상인으로서 컨셉시온에 도착하였고, 19세기 중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칠레 와인의 본거지인 센트럴 밸리의 하시엔다스에서 덩굴을 경작하기 위해 왔다. 아라우카니아 지역에도 프랑스 조상의 중요한 수가 있는데, 19세기 후반에 농민과 가게 주인으로서 정착민들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라틴 문화가 유사해지면서 프랑스 이민자들은 칠레 주류 사회에 빠르게 동화되었다.
1840년부터 1940년까지 약 25,000명의 프랑스인들이 칠레로 이주했다. 그들 중 80%는 프랑스 남서부에서 왔으며, 특히 바세스피레네(바스크 국가와 베아른), 지롱드, 차렌테, 차렌테, 그리고 두란, 게르스, 도르도뉴 사이에 위치한 지역에서 왔다.[3]
대부분의 프랑스 이민자들은 1875년에서 1895년 사이에 이 나라에 정착했다. 1882년 10월부터 1897년 12월 사이에 칠레에 정착한 프랑스인은 8,413명으로 [4]이 시기부터 이민자의 23%(스페인 다음으로 두 번째)를 차지한다. 1863년, 칠레에는 2,650명의 프랑스 시민이 등록되었다. 세기 말에 그들은 거의 3만 명이었다.[5] 1865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칠레에 설립된 8만320명의 외국인 중 6,483명이 프랑스인으로, 독일과 영국인에 이어 칠레에서 세 번째로 큰 유럽 공동체였다.[6] 1875년, 이 공동체는 3,000명의 회원에 달했는데,[7] 이는 한국에 설립된 거의 8만 5천명의 외국인 중 12%에 해당한다. 1912년 칠레에는 1만 명의 프랑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중남미에 거주하는 14만9,400명의 프랑스인 중 7%에 해당한다.[8]
제2차 세계 대전에서, 1만 명이 넘는 프랑스계 칠레인들이 자유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나치의 프랑스[citation needed] 점령에 맞서 싸웠다.
오늘날 80만 명의 칠레인들이 프랑스 혈통인 것으로 추정된다.[1] 칠레의 전 대통령 미셸 바첼렛은 프랑스 출신이다.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또 다른 프랑스계 칠레인이다. 이 나라의 정치인, 사업가, 전문가, 연예인들 중 상당수는 프랑스 출신이다.
레거시
프랑스 화가 레이먼드 몬부아인은 1842년부터 1854년까지 칠레에 거주했으며 산티아고 미술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프랑스 건축가 프랑수아 브루넷 드 베인스는 이 도시의 첫 번째 건축학교를 설립했다.[9]
저명한 프랑스계 칠레인
- 안드레스 앨러먼드, 정치인 및 국방장관(2011~2012년)
- 알베르토 바첼레트 공군 총장 겸 미셸 바첼레트의 아버지
- 미셸 바첼레트 칠레 두 차례 대통령, 전 유엔여성대표
- 곤잘로 바루일렛, 데카테터
- 바르톨로메 블랑쉬, 칠레 육군 총통 겸 임시 대통령 (1932년)
- 비비안 블란로트, 정치인 겸 전 국방부 장관(2006~2007)
- 마리아 루이사 봄발 안테스, 작가
- 에두아르도 본발레트 전 축구선수 겸 스포츠 해설가
- 호르헤 부넨
- 마르타 브루넷, 작가
- 세자르 케일렛, 배우
- 알프레도 캡데빌 소토, 1924년 유명한 영화 골론드리나에 배우 겸 캐스팅
- 폴 캡데빌, 테니스 선수
- 아돌포 쿠브
- 크리스티안 데 라 푸엔테 사바로츠, 배우
- 휴고 드로게트, 축구 선수
- 알베르토 풀루 전 축구선수 겸 스포츠 해설가
- 에두아르도 포니에
- 알베르토 푸게, 작가
- 아우구스토 달마르, 작가
- 루시아 히리아트 전 칠레 영부인(1973~1990)
- 배우 프란시스카 임보덴
- 마누엘 자크, 정치인
- 알린 킵펜하임,
- 엔리케 라포케이드, 작가
- 니콜로 알려진 Denisse Laval Soza, 가수
- 이자벨 르 브룬 드 피노체트
- 후안 카를로스 레틀리에
- 올랜도 레틀리에
- 르네 레틀리에
- 페르난도 마르텔, 축구 선수
- 에블린 매튜 포넷, 정치인 및 노동부 장관(2011-13년)
- 모델 겸 배우 요제피나 몬타네
- 세실리아 모렐 칠레 영부인(2010-14년 이후 2018년 이후)
- 알프레도 모레노 샤르메(Alfredo Moreno Charme), 사업가 겸 외무부 장관(2010-14)
- 모델 겸 배우 마이트 오르시니 파스칼
- 마누엘 호세 오산돈, 정치인 겸 상원의원
- 니콜 페로트, 골프 선수
- 막달레나 쁘띠, 작가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 장성 겸 군사 독재자 (1973-1990)
- 루시아 피노체트, 정치인
- 벨루스 프라우스, 테니스 선수
- 제이미 라비넷, 정치인
- 마누엘 레카르렌 렌코레
- 프란시스코 레예스 모란데, 배우
- 알바로 루돌피 폰테인, 배우
- 레네 슈나이더 체로 육군 장성
- 후안 슈베르카소
- 루이스 수베르카소
- 아니타 티주, 가수, 래퍼
- 가브리엘 발데스 수베르카소, 정치인
- 마누엘 카밀로 비알
- 로베르토 비오 육군 장교
- 라몬 비나이, 오페라 테너
참고 항목
참조
- ^ a b 파벡스 R.(2014). Le Chili et les mouvements migratoires, Hommes & migrates, Nº 1305, 2014. doi: 10.4000/hommesmigations.2720.
- ^ 듀버트랜드, R. (2019) Las relaciones는 Francia y Chille, ayer y hoy. Estudios internacionales(산티아고), 51(194), 211-218. doi: 10.5354/0719-3769.2019.55740.
- ^ Domingo, Enrique Fernández (10 November 2006). "La emigración francesa en Chile, 1875-1914". Amérique Latine Histoire et Mémoire. Les Cahiers Alhim. Les Cahiers Alhim (12). doi:10.4000/alhim.1252.
El 80% de los colonos que llegan a Chile provienen del País Vasco, del Bordelais, de Charentes y de las regiones situadas entre Gers y Périgord.
- ^ Domingo, Enrique Fernández (2006). "La emigración francesa en Chile, 1875-1914: entre integración social y mantenimiento de la especificidad". Amérique Latine Histoire et Mémoire (12). doi:10.4000/alhim.1252.
Según los documentos oficiales del Ministerio chileno de relaciones exteriores, entre octubre de 1882 y diciembre de 1897 la entrada de franceses en el país se estima en 8.413 personas
- ^ "La influencia francesa en la vida social de Chile de la segunda mitad del siglo XIX" (PDF).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2004-02-06. Retrieved 2009-01-25.
Los datos que poseía el Ministerio de Relaciones Exteriores de Francia ya en 1863, cuando aúno se abría Agencia General de Colonización del Gobierno de Chile en Europa, con sede en París, daban cuenta de 2.650 ciudadanos franceses residentes. Esta cifra fue aumentando paulatinamente hasta llegar, tal como lo consignaba el Ministerio Plenipotenciario Francés en Chile, a un número cercano a los 30.000 franceses residentes a fines del siglo.
- ^ Journal des économistes. 1867.
Le recensement de la population du Chili a constaté la présence de 23,220 étrangers. (...) Nous trouvons les étrangers établis au Chili répartis par nationalité de la manière suivante : Allemands (3,876), Anglais (2,818), Français (2,483), Espagnols (1,247), Italiens (1,037), Nord-Américains (831), Portugais (313) (page 281).
- ^ Collier, Simon; Sater, William F. (18 October 2004). A history of Chile, 1808-2002. ISBN 9780521534840.
p. 29. The census of twenty-one years later put the total at around 35,000 - including 5,000 French.
- ^ L'Amérique latine et l'Europe à l'heure de la mondialisation. January 2002. ISBN 9782845862814.
p. 194. Chili : 10 000 (7%).
- ^ France and the Americas. January 2002. ISBN 9782845862814.
p. 30. Raymond Monvoisin lived in Chile from 1842 to 1854, founding the Academy of Fine Arts of Santiago. François Brunet de Baines (1799-1855) founded the city's first school of archit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