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레체

Paul Reckzeh

폴 레체(Paul Leczeh, 1913년 11월 4일 ~ 1996년 3월 31일 함부르크)는 내과의사게슈타포 간첩으로 1943년 말에 스위스 의사라고 주장하면서 가담했던 솔프 서클의 대원들을 배신했다. 그의 배신은 많은 솔프서클 회원들의 투옥과 죽음으로 이어졌다.

조기생활과 교육

레체에는 1913년 의학 교수 폴 레체(Paul Leczeh)의 아들로 태어났다.[1] 그는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의학을 공부했고 20살에 NSDAP의 회원이 되었다. 1940년 학업을 졸업한 뒤 비르켄베르데르의 한 병원에서 보조의사가 되었다. 그는 또한 ReichsérztekammerReichsinium für die besetzten Ostgebiete에서 일했다. 1944년에 그는 Todt OrganizationStabsarz(스태프 외과 의사)가 되었다. 1943년부터 그는 "로비"라는 코드인 게슈타포의 스파이로 일했고 허버트 랑게르 밑에서 복무했다. 1943년 8월, 그는 독일 이민자들이 연합군과 어떤 종류의 접촉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위스로 가야 한다는 임무를 받았다. 그가 솔프서클 회원들을 의식하고 접촉하게 된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폴크스바겐츠호프 목격자

폴크스바겐트쇼프 전 키프와 폰 타덴을 상대로 제기한 사건에서 레체흐는 주증인으로 활동했다. 다음과 같은 판단이 내려졌다.

  • 엘리자베스타덴은 1944년 9월 8일에 처형되었다.
  • 오토 키프는 1944년 8월 26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 힐거 판 셰르펜버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Irmgard Zarden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1944년 7월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 7월 20일에 이어 솔프 서클 회원들을 상대로 한 사건이 더 많이 발생했고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독일민주공화국의 전쟁 후 생활

레체흐는 게슈타포와의 협력과 활동으로 1945년 5월 10일 SMERSH에 의해 전쟁 말기에 체포되었다. 는 처음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NKVD 특별 캠프 Nr. 6에 파견되었다가 1945년 9월에 다른 캠프로 옮겨졌다. 1946년 소련의 점령지 행정부는 레체에게 고소를 하였는데, 이 사건은 다시 독일의 소련 군사 행정부로 보내졌다. 레체흐는 법적 절차가 계속되려면 1950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까지 그는 뮐베르크부헨발트에 있는 캠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내무부 장관은 레체흐가 나치즘에 대한 정치적 반대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간첩 행위로 기소되었다.[2] 1950년 6월 3일 레체 지방법원에서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석방 후 동독에서 생활하며 의사로 개업했다.[3] 1978년 그는 딸 바바라가 함부르크로 도망치려 할 때 동독 스타시에게 배신했다.[4]

참조

  1. ^ Vater Paul Leczeh bei DNB; VIAF = 55110586
  2. ^ 지타트 아우스 데르 앙클라게슈리프트 베이 라이데
  3. ^ 독일어 위키백과 참조:폴 레체
  4. ^ 독일어 위키백과 참조:폴 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