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스 케르마우너

Taras Kermauner
타라스 케르마우너

타라스 케르마우너(Taras Kermauner, 1930년 4월 13일 ~ 2008년 6월 11일)는 슬로베니아문학사, 평론가, 철학자, 수필가, 극작가, 번역가였다.

인생

타라스 케르마우너는 루블랴나에서 슬로베니아 공산주의자 정치인이자 지적 두샨 케르마우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동생 알레쉬는 시인이자 예술가였다. 타라스 케르마우너는 Ljubljana Classic Lyceum에 다녔고 이후 Ljubljana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54년에 졸업했다. 1957년부터 58년까지 앙리 르페브르 감독의 감독 아래 파리에서 공부했다.[citation needed]

대학 시절, 커마우너는 비판 세대로 알려지게 된 슬로베니아 지식인 및 예술가 그룹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티토이스트 제도의 문화 정책에 도전한 레비자 57, 페르스펙티브 등 여러 잡지를 발행했다. 이 시기 케르마우너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 중에는 작가 겸 극작가 도미니크 스몰, 시인 데인 자크, 수필가 겸 극작가 프리모o 코작, 문학사학자 얀코 코스, 사회학자 겸 반체제 인사 조제 푸치닉 등이 있었다.[citation needed]

1960년대 초, 케르마우너는 철학자 겸 문학 이론가인 두샨 피르예베크와 오랜 개인적 친분을 맺기 시작했는데, 그는 케르마우너의 지적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케르마우너는 기독교에 가까워졌고 1980년대 중반에는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여 공적인 삶을 떠났다.[citation needed]

그는 그의 마지막 20년을 슬로베니아 리토랄카르스트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보냈고, 그의 시간을 글쓰기와 공부에 바쳤다. 1981년 이반 칸카르의 희곡에 관한 논문으로 사라예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후기 연구의 대부분을 슬로베니아 연극과 극적인 작품의 발전에 바쳤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더 깊은 이념적, 실존적 요소를 찾았다. 같은 기간 레이먼드 아론, 길레스 델레우제, 장 보드리야르의 사회학 저술로 지적 관심을 넓혔다.[citation needed]

2008년 초 세상을 떠나기 직전 공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그는 새로 창당한 사회 자유당 제레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같은 해 봄에 류블랴나에서 죽었다.[citation needed]

그는 작가 알렌카 골예프슈체크와 결혼했다. 그들의 딸은 시인 악신자 케르마우너다. 타라스 케르마우너는 정치 활동가, 시인, 슬로베니아 옴부즈만(2001-07)의 아버지이기도 했다.[citation needed]

Kermauner는 슬로베니아 드라마에서 가장 위대한 연구자이자 전문가로 여겨졌다. 그의 생애 작품은 슬로베니아 연극을 모두 분석한 <재건>이나 슬로베니아 연극의 재해석이라는 통칭으로 출간된 일련의 모노그래프였다.

루카스 교르지(Lucacs)의 여러 작품과 츠베탄 토도로프의 《계몽주의 정신》을 번역하기도 했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