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파키스탄 관계
Iran–Pakistan relations이란 | 파키스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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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파키스탄은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의 독립일에 관계를 맺었고, 이때 이란은 파키스탄을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양측은 가능한 한 경제적 협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국경을 따라 마약 거래와 싸우고 발로치스탄 지역의 반란과 싸우는 등 상호 이익이 있는 여러 분야에서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냉전 (1945–1991) 기간 동안, 두 나라는 동구권에 대항하는 서구권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은 반공 동맹인 센토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이란은 1965년의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1971년의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을 도왔습니다. 양국은 발로치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공통된 반감을 공유하고 1970년대 발로치스탄 작전에 협력했습니다. 이란은 1971년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과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을 지원했습니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1978~1979) 이후 파키스탄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인정했습니다. 소련-아프간 전쟁(1979-1989) 동안, 이란은 파키스탄의 자금 지원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파키스탄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에서 이란을 지원했습니다. 제3차 아프간 내전(1992~1996)에서 파키스탄의 탈레반 지원은 당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반대하는 이란에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뒤이어 벌어진 제4차 아프간 내전(1996~2001)에서 이란은 반탈레반 북부동맹을 지지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이란과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종종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대리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란은 또한 대규모 일대일로 계획의 일환으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에 가입하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2020년대 완전 철군하고 탈레반이 정권을 되찾은 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이란과의 협력을 강화해왔으며,[1] 양측은 지정학적 경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2]
Pew Research Center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이란의 영향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여론조사는 파키스탄인들의 매우 높은 비율이 그들의 서쪽 이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3][4]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도 파키스탄을 포함한 모든 이슬람 국가들의 동정과 도움, 상호 협력을 촉구했습니다.[5] 그러나 몇 가지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6]
역사
고대
오늘날 이란과 파키스탄을 구성하는 지역들은 파키스탄이 이란 고원과 인도 아대륙 사이의 중간 지대에 걸쳐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다양한 지점에서 연속적인 유라시아 정책의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은 발칸 반도와 인더스 강 사이의 지역(페르시아인들에게는 힌두교라고[7] 알려짐)에 걸쳐 다리우스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방 발로치스탄과 카이버 파크툰크화를 포함하는 지역을 정복했습니다.[8]
1979년 이전의 관계
제국 이란은 냉전 기간 동안 파키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블록과의 상호 동맹 덕분이었습니다.[9][10] 이란은 파키스탄을 독립국가로 인정한 최초의 국가였고,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파키스탄을 공식 국빈 방문한 최초의 국가 원수였습니다 (1950년 3월).[10] 파키스탄의 창시자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1947년부터 이슬람 세계, 특히 이란과의 우호 관계 증진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10] 파키스탄이 1947년 8월 독립한 후, 이란은 주권을 인정한 최초의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10]
1950년 5월 리아콰트 알리 칸 총리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총리에 의해 우호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우호조약의 일부 조항은 지정학적 의미가 더 넓었습니다.[11] 파키스탄은 인도 정부가 이란의 샤와 동맹을 맺은 전통적인 아랍 군주국들 중 많은 나라들을 위협하는 범 아랍 이데올로기를 수출하려고 했던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후 자연스러운 파트너를 찾았습니다.[11] 외교 정책 작가인 Harse V. Pant는 이란이 파키스탄의 자연적인 동맹국이자 모델이었던 다른 이유들도 언급했습니다. 양국은 무역을 목적으로 서로 MFN 지위를 부여했는데, 샤는 이란산 석유와 가스를 파키스탄에 후한 조건으로 제공했고, 이란과 파키스탄군은 발루치스탄의 반군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협력했습니다.[11] 샤의 시대에 이란은 많은 분야에서 파키스탄과 더 가까워졌습니다.[10] 파키스탄, 이란, 튀르키예는 미국이 후원하는 중앙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소련의 남방과 함께 방어동맹을 구축했습니다. 이란은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에 간호사, 의료품, 석유 5,000톤의 선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란은 또 무력분쟁 기간 인도에 대한 석유 공급 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10] 인도 정부는 전쟁 기간 동안 이란이 노골적으로 파키스탄을 선호했고 인도를 약화시키려 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10]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가 중단된 후, 이란은 서독으로부터 90대의 F-86 사브르제트 전투기를 구매하여 파키스탄에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10]
1955년 파키스탄이 중앙조약기구(CENTO)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인도에 대한 안보 의무에 크게 동기부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영국 정부가 이란에 있는 영국 석유 회사들의 국유화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란이 만족할 때까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10] 무즈타바 라즈비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행사 동안 이란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면 파키스탄은 CENTO에 가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10]
이란은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에 다시 한 번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번에는 인도에 대한 외교적 지원뿐만 아니라 군사 장비를 공급했습니다. 샤는 인도군의 공격을 파키스탄 국내/내정에 대한 노골적인 침략과 간섭이라고 표현했고,[12] 파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파키스탄에 100% 뒤쳐져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12] 아미르-압바스 호베이다 이란 총리는 "파키스탄은 폭력과 무력에 시달렸다"며 뒤를 이었습니다.[12] 이란 지도부는 쿠르드족과 발로치 분리주의자들이 이란 정부에 맞서 봉기하도록 부추겨 이란 국내[12] 안정과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며 파키스탄 해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12] 같은 맥락에서 이란은 파키스탄이 절박한 상황에서 중국(미국 주도의 서방 블록에 대한 공산주의적 경쟁자)의 무릎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로 파키스탄에 대한 무기 공급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12]
이후 1971년 12월 파키스탄이 해체되면서 이란은 동부 측면의 안정성과 영토 보전을 위해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가 분리된 국가로 등장하면서 파키스탄이라는 국가 자체는 물론 '2국가론/파키스탄 운동'은 그 명성에 심각한 부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파키스탄의 남아있는 서부 지역이 하나의 국가로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이란 정권에서 제기되었습니다.[13] 이 시기의 사건들은 파키스탄에 대한 테헤란의 중요한 인식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1973년 파키스탄 발로치스탄주에서 광범위한 무장 반란이 발생했을 때, 발로치 반란이 자국의 시스탄주와 발루치스탄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이란은 대규모 지원을 제공했습니다.[14] 이란은 파키스탄에 군사 장비(AH-1 코브라 공격 헬기 30대 포함)와 정보, 2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습니다.[15] 줄피카르 알리 부토 당시 파키스탄 총리 정부는 1971년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인도가 다시 한번 발로치스탄 지역의 소요와 반란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어떠한 개입도 부인했고, 아대륙의 추가적인 발칸화를 두려워한다고 주장했습니다.[15] 3년간의 전투 끝에 봉기는 크게 진압되었습니다.[15]
이란의 샤는 파키스탄에 군사 원조 외에도 석유와 가스를 우대하는 등 상당한 개발 원조를 제공했습니다.[13] 파키스탄은 개발도상국이자 약소국이었고, 1960-70년대 이란은 세계 5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강력한 경제/산업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명백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지역 초강대국이었습니다.[12][16] 그러나 당시 경제발전과 군사력 증강에 대한 이란의 완전한 미국 의존은 소련과 동맹을 맺은 아랍세계로부터 적대감을 얻었습니다.[12] 1974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라호르에서 열린 이슬람 회의에 참석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란과 파키스탄 사이의 짧은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두 사람 사이의 알려진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라호르에서 열린 이슬람 회의에 참석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12] 이후 1976년, 이란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화해를 촉진함으로써 다시 한 번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10]
1974년 인도의 기습적인 핵실험 폭발(코드명 미소 짓는 부처)에 대한 이란의 반응은 조용했습니다.[13] 1977년 이란을 국빈 방문한 부토 파키스탄 총리는 팔라비에게 파키스탄의 비밀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지지하도록 설득하려고 했습니다.[13] 샤의 반응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부토의 의무를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12]
1977년 7월, 야당 연합에 의한 정치적 선동 이후, 부토는 군사 쿠데타로 공직에서 쫓겨났습니다.[10]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이 이끄는 새로운 군사독재정권은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보수주의적이었고, 당시 보다 세속적인 이란과는 대조적으로 그 성격과 접근 방식에 있어서 종교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0]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란과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파키스탄의 관계는 1980년대 종파간 긴장으로 크게 경색되었는데, 당시 대통령의 군사독재 정부가 파키스탄 전역에 강요한 수니파 편향 이슬람화 프로그램에 따라 파키스탄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17]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각각 시아파와 수니파 무슬림들의 "주도적인 국가 권력"으로 간주)는 파키스탄을 그들의 대리적인 종파 분쟁의 전쟁터로 점차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내전 당시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데오반디[18] 탈레반 운동을 지원한 것은 당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반대했던 시아파가 이끄는 이란의 문제가 됐습니다.[19]
이란 혁명 이후의 관계
부토는 군사 쿠데타로 무함마드 자울하크에 의해 축출되었습니다. 이는 반년 뒤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고 이란의 샤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20] 1979년 파키스탄은 이란에서 새로운 혁명 정권을 인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이 혁명적인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외무장관 아그하 샤히는 1979년 3월 10일 이란 외무장관 카림 산자비를 만나 테헤란을 즉시 국빈 방문했습니다.[10] 두 나라 모두 이란과 파키스탄이 더 밝은 미래를 향해 함께 행진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10] 아그하 샤히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회담을 갖고 이 지역의 발전상에 대해 논의했습니다.[10]
이란의 최고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CENTO에서 탈퇴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종료했습니다.[10] 이란과 파키스탄은 종교적으로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호메이니는 시아파 무슬림이었고 지아는 수니파 무슬림이었습니다.[10]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범이슬람적 정체성에 대한 공통된 열망은 새로운 이란-파키스탄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1979년 4월 11일, 지아는 "호메이니는 이슬람 반란의 상징"이라고 유명하게 선언했습니다.[10] Zia-ul-Haq의 의견에 대한 답례로, 호메이니는 편지에서 무슬림의 통합을 촉구했습니다.[10] 그는 "파키스탄과의 관계는 이슬람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10]고 선언했습니다. 사히페예 이맘에 따르면 1988년 5월(쇼왈 1408년), 이드 알 피트르에 대한 지아의 인사 카드에 응답하여 호메이니는 지아에게 평화와 자비를 보냈다고 합니다.[21]
파키스탄 시아파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이란 지도자들은 파키스탄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우디의 영향력에 대항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정치화된 많은 파키스탄 시아파들 사이에서 친이란적인 입장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습니다. 많은 파키스탄의 시아파 웹사이트와 책들은 호메이니 정권을 옹호하는 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22] 파키스탄은 임란 칸의 PTI가 집권하기 전까지 대부분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온 미국과 다시 한번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10][23]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파키스탄의 이란 지원
이란은 1979년에 혁명을 일으켰고, "붉은 시아파"를 이란의 인근 지역에 수출하겠다는 아야톨라의 위협은 결국 1980년에 미국과 아랍 세계의 지원을 받아 수니파가 통치하고 세속적인 이라크를 침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침공은 1988년까지 8년 동안 지속될 치명적인 이란-이라크 전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파키스탄이 대체로 중립을 지키는 동안, 이란 혁명 감정을 수출하겠다는 루홀라 호메이니의 지속적인 위협은 파키스탄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긴장을 부채질했습니다.[24] 이라크와 파키스탄과 같은 인근 국가의 시아파 무슬림들 사이에 혁명적인 이란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전투력이 증가하면서 파키스탄의 많은 수니파 무슬림들은 깊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25] 친사우디, 친 수니파, 반(反)시아파 정서에도 불구하고,[25] 파키스탄 대통령 지아울하크는 파키스탄이 (미국과의 동맹관계 때문에) 서부 이웃 국가와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신중하게 나라의 안보를 관리해야 했습니다. 동쪽의 인도에 대한 선점 때문에 감당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입니다.[25] 1981년에 결성된 걸프협력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약 4만 명의 파키스탄군 병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여 이 지역의 대내외 안보를 강화했습니다.[25] 1987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사건에서 시아파 순례자들을 살해한 사건은 파키스탄 전역에 광범위한 소요와 비난에 직면했지만, Zia-ul-Haq는 단호하게 중립을 지켰고 걸프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파키스탄 군인들과 관련된 당사자들을 연루시키지 말라는 강력한 명령을 내렸습니다.[25] 미국이 만든 많은 스팅어들과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이 주로 소련에 대항하여 사용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수송된 다양한 중국 무기와 탄약들이 대신 이란에 판매되었고, 이것은 이라크에 대한 유조선 전쟁에서 이란의 결정적인 요인임이 증명되었습니다.[25] 미국과 다른 아랍 국가들의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비록 사우디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이 이란인들의 잠재적인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목적이었지만, 파키스탄은 이라크를 공개적으로 지원하지 않았고, 이란에 대한 작전/재정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내전
1979년 12월, 소련은 이슬람주의자들의 봉기에 대항하여 친소련, 공산주의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지원하고, 중앙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지배가 확립되거나 증가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서, 특히 이스라엘, 이란 (1979년 혁명까지), 이라크, 그리고 다른 많은 아랍 국가들. 1980년 초강대국(미국과 소련)과 다른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이란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호전되었습니다.[11]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 파키스탄은 미국, 중국 등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수니파 파슈툰족(아프간의 대다수)에게 은밀한 지원을 집중했고, 이란은 시아파 타지크족을 대부분 지원했지만, 이들은 모두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으로 연합해 소련 침략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11]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이 승리한 후, 무자헤딘이 더 이상 외부 침략자에 대한 연합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이란과 파키스탄의 경쟁이 심화되었습니다.[26] 1989년 이후 베나지르 부토가 이끄는 파키스탄이 소련-아프간 전쟁이 끝난 후 발발한 내전 동안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세력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란과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27] 이로 인해 이란이 파키스탄의 경쟁국인 인도와 더욱 가까워지는 등 큰 균열이 생겼습니다.[27] 소련의 철수 이후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내 수니파 탈레반 조직을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지원한 것은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 반대하는 시아파 이란의 문제가 됐습니다.[19]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과 싸웠고, 수도 카불을 포함한 90퍼센트의 국가를 장악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우고 극단적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와하브 통치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26] 파키스탄의 한 외교관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이란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각 주의 다른 나라와의 경쟁, 특히 이란의 세 나라와의 경쟁을 고려할 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27] 1995년 부토는 이란을 장기간 국빈 방문하여 관계를 크게 완화시켰습니다. 공개 회의에서 그녀는 이란과 이란 사회를 높이 평가했습니다.[28]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시아파 무장세력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관계는 더욱 경색되었습니다.[11]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탈레반은 1998년 마자르이샤리프 시를 점령해 시아파 무슬림 수천 명을 학살했습니다.[11] 가장 심각한 관계 단절은 1998년, 이란 정부군이 이란 외교관 11명과 트럭 운전사 35명, 이란 언론인 1명을 인질로 잡고 이후 이들을 모두 처형했다고 비난한 이후 발생했습니다.[11] 이란은 아프가니스탄-이란 국경에 30만 명 이상의 군대를 집결시키고,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11] 이것은 탈레반 정부를 계속 지지하는 파키스탄과의 이란 관계를 긴장시켰습니다.[11] 1998년 5월 파키스탄은 인도의 핵실험(포크란-II)에 대한 대응으로 발로치스탄 지방의 통제된 시설에서 핵무기 5개를 폭발시키는 사상 최초의 핵무기 실험(코드명 차가이-I)을 실시했고, 두 사건은 이후 유엔으로 이어졌습니다. 파키스탄과 인도 모두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했지만, 그 어느 나라도 더 이상의 실험을 계속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파키스탄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핵무기를 획득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1997년 9월 7일 파키스탄의 핵 능력과 핵실험을 인정했습니다.[29] 이란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축하했습니다.[30]
1990년대 후반 양자·다자 방문
1995년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이란을 국빈 방문하여 에너지 관련 각서의 기초를 다지고 양국간 에너지 안보 협정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1997년 12월 9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제8차 OIC 정상회의를 위해 나와즈 샤리프 총리가 테헤란을 방문했습니다. 그 곳에서 샤리프는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31]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군사독재체제 하에 1999년 12월 8일부터 9일까지 1박 2일간 테헤란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1999년 10월 12일 그의 군사 쿠데타와 파키스탄의 권력 장악 이후 그의 첫 번째 이란 방문 (그리고 세 번째 국제 여행)이었습니다. 이란에서 무샤라프 대통령은 모하마드 하타미[32] 이란 대통령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가졌습니다.[33] 이번 방문은 무샤라프 대통령이 파키스탄에서 자신이 인수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34].[35]
이번 회담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정세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었는데, 이는 양국이 "아프간 당사국들 간의 화해와 대화를 통해 평화 프로세스를 장려하기 위한 우리 두 나라의 정책을 조정하도록" 이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36][37]
이란은 1998년 아프가니스탄 밤얀에서 파키스탄 군용기들이 탈레반 정부를 지지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시아파 거점을 폭격했다며 파키스탄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습니다.[38][39]
2000년 이후의 관계
2000년 이후 이란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정상화를 향해 나아갔고, 경제 협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9.11 테러는 양국의 외교 정책 우선순위를 변화시켰습니다.[11] 테러 공격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테러 대응 기조로 인해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인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상대로 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침공으로 1차 탈레반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란 관리들은 처음에는 탈레반의 침공과 퇴거를 환영했지만, 곧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 아시아 및 페르시아만에서 미군에 포위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11]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악의 축"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도 일부 이란 관리들로 하여금 모하마드 하타미 치하의 이란-미국 관계에서 일어난 데탕트 사건을 종식시키고, 이란이 정권 교체를 위한 다음 단계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들었습니다.[11]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작전과 함께 혁신적인 외교와 민주화를 강조하면서 이란 지도자들을 더욱 걱정시켰습니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의 변화는 양국 간의 전략적 융합을 증가시켰고,[40] 이란은 또한 더 큰 일대일로 계획의 일환으로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에 가입하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습니다.[41][42] 파키스탄과 미국의 소외로 중국은 이란과 파키스탄 양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가 되었습니다.[43] 파키스탄과 이란의 관계 확대를 도모했던 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의 정책과 2021년 탈레반 장악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위한 양국의 공동 지원 아래 양국의 외교 관계는 최근 개선되고 있습니다.[44] 그는 또한 사우디와 이란이 계속하고 있는 대리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45]
군사안보
파키스탄에 대한 이란의 지원은 1960년대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 원조를 중단한 후 이란이 파키스탄에 미군 무기와 예비 부품을 공급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46]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신임 총리는 군사 동맹이 파키스탄을 보호하거나 적절하게 지원하지 못하고 대신 소련을 소외시켰다고 생각하자 즉시 파키스탄을 CENTO와 SEATO에서 철수시켰습니다. 1974-77년 무장 분리주의 운동에 맞서 발로치스탄 반란 단계에서 심각한 군사 협력이 이루어졌습니다.[47] 약 100,000명의 파키스탄과 이란 군대가 발로치스탄의 분리주의 조직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고 1978-80년에 저항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습니다.[47] 2014년 5월, 양국은 국경 지역의 테러리스트들과 마약 밀매자들에 대한 공동 작전에 합의했습니다.[48]
2019년, 카슈끄지-자헤단에서 이슬람 혁명수비대 2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은 자살 폭탄 테러 이후, 이란 관리들은 파키스탄을 비난했습니다.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이란 소장은 이란이 복수하기 전 파키스탄에 무장단체 자이쉬 알아들에 대한 탄압을 요청했습니다.[49] 2019년 2월, 이란 외무부 대변인 바람 가세미는 파키스탄이 "이란에서 국경을 초월한 공격을 멈출 수 없다"고 간주한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50] 파키스탄은 차례로 이란에 폭격 조사에 협조를 요청하고 공격 피해자들에게 동정의 뜻을 전했습니다. 파키스탄 대표단이 이란으로 갈 예정이었습니다.[51] 2020년 5월 12일 파키스탄-이란 국경에서 파키스탄 1군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은 테러 공격 이후, 카마르 자베드 바좌 COAS 장군과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군 총참모장은 전화 통화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과 국경 안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 뒤 국경 안보를 강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52]
이란 공군은 파키스탄에 MFI-17 머쉬샤크 약 25대를 주문했습니다.[53]
발로치스탄 분쟁
이란과 파키스탄은 모두 고립된 발로치스탄에서 발로치 분리주의 무장세력의 공격에 직면해 있으며, 관계 악화와 상호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54] 발로치스탄 해방군과 자이슐-아들은 종종 서로의 영토에서 활동했다는 비난을 받습니다.[55][56]
2021년 9월, 파키스탄군은 "이란 영토의 국경 초소를 목표로 한 공격으로 자국 군인 1명이 사망하고 다른 군인 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단체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이란 당국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57] 2023년 6월, 이란 파키스탄 국경에서 테러가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국경 순찰 경찰관 몇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58] 그 며칠 전에도 국경에서 또다시 테러가 발생해 이란 국경순찰대원 5명이 숨졌습니다.[59]
이란은 2024년 1월 16일 파키스탄 땅에서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발로치 테러단체 자이쉬 알 아들 본부를 겨냥한 작전을 벌여 어린이 2명을 숨지게 했습니다.[60] 이로 인해 2024년 1월 18일 이란 시스탄과 발루치스탄 주에서 테러리스트들을 겨냥한 파키스탄의 보복 작전 '마르그 바 사람차르'가 촉발돼 어린이 4명과 여성 3명이 사망했고, 파키스탄 영공과 주권 침해에 따른 결과를 경고하고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61][62]
파키스탄, "무고한 어린이 2명 살해"[63] 파키스탄 외무부 대변인은 "파키스탄은 이 불법 행위에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4년 1월 17일, 파키스탄은 전날 이란이 자국 영토로 발사한 미사일과 무인기에 대한 항의로 대사의 귀환을 발표했습니다.[64] 그날 오후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시스탄-발루치스탄 지방의 한 마을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난 것이 파키스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파키스탄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테러범, 특히 발루치 무장단체를 겨냥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적 관점
국제사회의 제재와 접경지역의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양국 무역의 잠재력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밀수와 마약 밀거래에 문제가 있습니다.[66]
2023년에 이란과 파키스탄은 첫 국경 시장을 열었습니다. 12개의 국경 시장이 더 지어질 것입니다.[59]
우선무역협정
2005년에 이란과 파키스탄은 미화 5억 달러의 무역을 했습니다. 타프탄의 육지 국경은 전기와 석유 무역의 통로입니다. 이란은 타프탄을 향해 철도망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란-파키스탄-인도 파이프라인(IPI Pipeline)은 현재 논의 중이지만 인도는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습니다. 인도 정부는 IPI 파이프라인 사업에 반대하는 미국의 압력을 받았고, 인도와 미국이 핵협상을 진행하자 미국의 정책에 귀를 기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이란의 핵 프로그램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도 IPI 송유관 사업을 전면적으로 무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09년 양국 간 무역은 14억 파운드 증가했습니다.[67] WTO에 따르면 2007-08년 파키스탄의 대이란 상품 교역액은 연간 2억 5600만 달러의 수입액과 2억 1860만 달러의 수출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68]
쌍무무역
2001년 1월 12일, 파키스탄과 이란은 무역 분쟁에 관한 "파키스탄-이란 공동 기업 협의회" (PIJB) 기구를 결성했습니다.[69] 이 기구는 파키스탄의 민영화와 양국의 경제 자유화를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69] 2012년 양국간 무역액은 3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70] 파키스탄 국립은행의 2011-12 회계연도 공식 수치에 따르면 수입은 1억 2,400만 달러, 수출은 1억 3,100만 달러로 2015년 4월까지 이란에 대한 수출은 3,600만 달러, 수입은 100만 달러 미만으로 붕괴되었습니다. 2011년에 이란과 파키스탄의 무역은 10억 달러 미만이었고, 종교적인 유대 관계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지리적 국경도 무역 수준의 향상을 촉진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70]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이라크에 이어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바스마티 쌀 시장입니다.[71]
일대일로 구상
이란과 파키스탄은 모두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72] 중국과 이란의 25년 전략적 합의는 파키스탄에 유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란의 적극적인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 참여를 환영하고 있습니다.[73][74]
테크노-기업가 정신
이란과 파키스탄 간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 개선의 모멘텀은 이란과 파키스탄 당국 간의 양자 협정의 물결을 만들었습니다. 테크노-기업가 정신은 글로벌 개발에서 높은 경향의 논의 주제이며, ECO 지역(파키스탄-이란- 튀르키예)에서는 2016년 이후 많은 공동 프로젝트가 수행되었습니다. ScienceTech+ Center는 CODE Entrepreneurship Consultants Ltd(파키스탄)와 Ideparvaran MashreghQazal Ltd(이란)의 공동 협약으로 파키스탄과 이란 기업가들이 설립한 최초의 공동 테크노-기업가 정신 센터입니다.[75][76] [[이란의 파키스탄]]과 이란 당국이 이란, 파키스탄,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카라파린 쇼라는 제목으로 이 플랫폼 아래 여러 행사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 영향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는 파키스탄의 산업 부문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78] 미국이 테헤란에 내린 무역 금수 조치로 파키스탄의 과일 산업은 이전에 최소 3만 톤의 망고가 수출된 이란에서 수익성이 좋은 시장을 잃었다고 합니다.[78] 파키스탄의 통계에 따르면, 과일 업계와 수출업체들은 현 시즌 동안 약 1천만 달러어치의 망고를 수출할 수 없었습니다.[78] 상무부(MoCom)는 이 문제를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미국 농무부와 직접 접촉해 왔습니다.[78]
국경횡단
2020년 3월 16일,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의 COVID-19 범유행으로 인해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및 이란과의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맞물려 특히 농산물 교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79] 그러나 2020년 7월까지 가장 필요한 물품 교환을 보장하기 위해 제한된 양의 트래픽을 위해 국경이 다시 개방되었습니다.[80] 2020년 12월 19일 파키스탄에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를 방문한 후 림단-가브드 국경 관문이 개설되어 두 이웃 국가 간의 비즈니스와 무역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관측통들은 이란이 파키스탄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슬라마바드와 리야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이용하려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81]
튀르키예는 이스탄불에서 파키스탄 상업용 트럭 호송 환영식을 갖고 이슬라마바드-테헤란-이스탄불 도로 수송 회랑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파키스탄에서 물품을 운반하는 최초의 두 대의 NLC (National Logistics Company) 트럭은 TIR (Transports Internationalaux Routiers) 협약에 따라 이란을 거쳐 튀르키예에 도착했습니다. 트럭들은 9월 27일 카라치를 출발하여 10월 7일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5,300 킬로미터(3,293 마일)의 여행을 마쳤습니다.
에너지
이란-파키스탄 가스관
이란과 파키스탄 정부 간의 가스관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논의는 1994년에 시작되었습니다.[82] 베나지르 부토 총리와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1995년에 예비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남-북 파스 가스전에서 파키스탄 카라치로 가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예고했습니다. 이후 이란은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송유관을 연장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1999년 2월, 이란과 인도 사이에 예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83]
이란은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의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서방의 제재로 수년 전부터 석유와 가스 자원 개발에 힘써왔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Miano, Sawan, Zamzama 가스전에서 새로운 가스 발견을 포함한 다른 정치적인 이유로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인들은 파이프라인 보안에 대한 우려와 다양한 문제, 특히 가격에 대한 이란의 우유부단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란-파키스탄-인도(IPI Pipeline) 프로젝트는 1995년에 계획되었고, 거의 15년 만에 인도는 자국의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도 불구하고 2008년에 프로젝트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2007년 2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란에 4.93달러의 BTU(4.67달러/GJ)를 지불하기로 합의했지만, 가격 조정과 관련된 일부 세부 사항은 추가 협상에 열려 있습니다.[84] 2008년 이후 파키스탄은 이란과의 어떤 종류의 에너지 거래에 대해서도 미국으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IPI 가스관 프로젝트에 대한 협상이 수년간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과 이란은 2009년 테헤란에서 마침내 최초의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양국 관리들에 의해 평화 파이프라인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자르다리 대통령과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에 의해 서명되었습니다. 2009년 인도는 가격과 안보 문제를 이유로 이 프로젝트에서 철수했고, 2008년 미국과 또 다른 민간 핵 협상을 체결한 후 이 프로젝트에서 철수했습니다.[85][86] 그러나 2010년 3월 인도는 파키스탄과 이란에 2010년 5월 테헤란에서 3자 회담을 열 것을 요구했습니다.[87]
이 프로젝트의 초기 설계에 따르면 2,700km 길이의 파이프라인은 이란 약 1,100km, 파키스탄 약 1,000km, 인도 약 600km에 걸쳐 있으며 파이프라인의 크기는 직경 56인치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가 프로젝트에서 철수하면서 송유관의 크기는 42인치로 줄어들었습니다. 2008년 4월, 이란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참여에 관심을 표명했습니다.[88]
중국과 파키스탄은 이미 2005년부터 중동산 원유를 중국 서부로 운송하기 위해 히말라야 횡단 송유관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89] 중국은 관로 건설에 참여하고 이란과 양자 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는 이유로 테헤란과 이슬라마바드를 계속 추진해 왔습니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이미 중동산 원유를 중국 서부로 운송하기 위해 히말라야 횡단 송유관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89] 2010년 8월, 이란은 방글라데시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초청했습니다.[90]
송전
테헤란은 2009년 이란으로부터 1000MW의 전기를 수입하기 위해 170Km 송전선로 건설에 5천만 유로를 제공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이미 이란으로부터 매일 34MW의 전기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란이 발전소에 공급하는 석유와 가스를 보조하기 때문에 수입된 전기는 독립 전력 생산국(IPP)이 생산하는 전기보다 훨씬 저렴합니다.[91] 이란은 또한 두 나라를 연결하는 이란과 파키스탄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92]
2023년 5월 셰바즈 샤리프 총리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매일 100메가와트의 전력을 과다르에 공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폴란-가브드 전력 전송선을 개통했습니다.[93]
중요사안
이란과 파키스탄은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양국 관계 발전에는 여전히 장애물이 있습니다. 2002년 탈레반이 제거된 후 이란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개선되었지만 긴장은 여전합니다. 파키스탄은 이미 동맹국인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아파 다수인 이란과의 이슬람 세계 전반에 걸친 영향력 경쟁에서 사우디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이란은 인구가 페르시아어인 다리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서부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간주합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각각 카이버 파크툰크화와 발로치스탄어와 같은 파슈토어와 발로치스탄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카슈미르 문제에 대한 이란의 견해
2010년 11월 19일,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에게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인 잠무와 카슈미르의 자유 투쟁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움마의 주요 임무는 팔레스타인 국가와 가자의 포위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카슈미르 등의 국가들에게 동정과 도움을 주고, 미국의 침략에 대항하는 투쟁과 저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94]그는[94][95] 나아가 무슬림들이 단결하고 "이슬람 공동체 전체에 무슬림 청년들 사이에서 각성과 책임감과 헌신감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96][97][98][99]
그의 연설의 핵심은 이스라엘, 인도, 그리고 미국을 향했지만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베일에 싸인 언급을 했습니다.
"미국과 서방은 더 이상 20년 전과 같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중동의 의사결정자가 아닙니다. 20년 전의 상황과는 달리, 핵 노하우와 다른 복잡한 기술들은 더 이상 이 지역의 이슬람 국가들에게 접근할 수 없는 공상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렁에 빠졌으며 "재난에 시달리는 파키스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미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의 전 대통령 (1981–89) 하메네이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이란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인 하메네이는 이란의 외교 정책에 매우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메네이는 1980년대 초 잠무와 카슈미르를 방문하여 스리나가르의 자마 마스지드 모스크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2017년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카슈미르가 억압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무슬림 세계가 "카슈미르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라마단에서 사람들을 공격한 압제자와 폭군들을 거부하라"고 촉구했습니다.[96][97][98][99]
2019년 인도가 인도령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없앤 후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는 카슈미르 문제에 대한 파키스탄의 입장을 지지해준 이란 최고 지도자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100]
평화 협력을 위한 원자들
1987년 이래 파키스탄은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꾸준히 저지해 왔지만, 파키스탄은 핵에너지 프로그램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이란은 NPT의 범위 내에서 핵 프로그램을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1987년 파키스탄과 이란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Zia-Ul-Haq가 직접 이란을 방문하면서 민간 핵 에너지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101]
국제적으로 볼 때,[101] 지아는 이란과의 이러한 협력은 순전히 "민간적인 문제"로,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IAEA에 따르면, 이란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연료 주기 기술을 구매하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101] Zia는 더 이상의 핵 거래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의 한 고위 과학자는 1987-89년에 원심분리기에 관한 민감한 보고서를 비밀리에 제출했습니다.[101]
2005년 IAEA의 증거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협력은 "비군사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으며,[102] 본질적으로 평화적이었습니다.[102] 이란은 1990년에 핵무기 기술을 위해 무려 50억 달러를 제안했지만 단호히 거절당했습니다. 1989년에 원심분리기 기술이 이전되었고, 그 이후로 평화협정을 위한 원자가 더 이상 없었습니다.[102]
2005년 IAEA의 증거에 따르면 1989년에 이전된 원심분리기 설계는 초기 상용 발전소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기술적인 오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설계는 핵무기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103]
비폭력적인 정책과 공식적인 관점
무역과 정치적 입장에 대한 분쟁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외교 정책이 사우디, 미국, 유럽연합과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은 이에 대해 경고하는 경향이 있으며, 지난 20세기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4단계 동안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습니다.[11] 점진적인 화해와 혼란스러운 외교를 통해 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변화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파키스탄과 이란은 국제적 행위자들의 압력을 고려하지 않고 관계의 온기를 유지함으로써 관계를 증진시켰습니다.[104]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이란과의 관계에 대해 파키스탄은 중립 정책을 채택했고, 이후 이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비폭력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6년 이후 파키스탄은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맞서 적극적인 핵무기 개발 대신 민간 핵개발에 착수할 것을 여러 차례 전략적으로 권고해 왔습니다.[105] 국제적인 측면에서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또 다른 핵무장 경쟁을 우려하여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꾸준히 중단하는 한편 경제 및 민간 인프라를 위한 이란의 핵에너지 사용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106]
파키스탄의 샤 메무드 쿠레시 외무장관은 2010년 하버드대 연설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이라고 정당화하고, 이란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할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미국의 "서곡을 수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쿠레시 장관은 또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했으며 이 조약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107]
일부 지정학적 분석가들은 이란과 파키스탄을 중동에서의 영향력 경쟁 상대로 묘사해 왔는데, 이란이 핵무장을 하면 파키스탄이 더욱 동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108]
양국은 국경 내에서 종교적, 민족적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상호 불신의 역사도 갖고 있습니다.[109]
수해구호
2019년 이란 홍수 때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청은 임란 칸 총리의 명령으로 32톤의 구호품을 이란에 보냈습니다. 두 개의 배송물로 구성된 화물에는 텐트 500개, 담요 3,300개, 응급 의료 키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110][111] 구호품은 C-130 항공기 2대를 이용하여 이송되었습니다. 앞서 무함마드 파이살 파키스탄 외무부 대변인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또 파키스탄이 이란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에 이란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112]
교육
파키스탄 국제 학교 및 대학 – 테헤란은 테헤란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가정에 추가적인 교육 요구를 제공하고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민
이란 남동부와 파키스탄 서부의 발로치스탄 지역에서 발로치족은 공식 국경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이 지역을 여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란 근위대와 파키스탄 국경군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발로치 분리주의 단체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지역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이란-파키스탄 가스관과 경제협력기구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면서 양국 정부의 고위 인사들 간의 만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113]
이란 언론사 대표단은 2004년부터 매년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있으며, 많은 언론인들이 파키스탄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문은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이란에서 파키스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투영하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했습니다.[114]
베나지르, 무르타자, 샤흐나와즈 부토 등 파키스탄 정계의 주목할 만한 인물들은 어머니 편에 선 이복 이란계 쿠르드족이었습니다. 파키스탄의 영부인 나히드 미르자는 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조정에서의 외교와 역할
외교관
이란은 미국과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에 미국 내 이란 이익 부문은 주미 파키스탄 대사관이 대표로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정보국(CIA)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이란의 핵 과학자 샤람 아미리가 워싱턴DC의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성역을 맡았습니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 9/11 테러에 연루된 혐의를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115]
2000년 이후 양자 방문
2001년 4월, 하산 로하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장관이 파키스탄을 국빈 방문하여 페르베즈 무샤라프와 내각을 만났습니다.[116] 이번 방문에서, 이란과 파키스탄은 서로의 의견 차이를 제쳐두고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광범위한 정부에 합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116][117]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은 2001년 11월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했습니다.[118] 카라지는 압둘 사타르[119] 파키스탄 외무장관과 무샤라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120] 이란과 파키스탄은 관계 개선을 약속하고, 유엔의 지원 하에 광범위한 기반의 다민족 정부를 설립하는 것을 돕기로 합의했습니다.[121]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2002년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파키스탄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이는 1992년 이후 이란 정부 수반으로는 처음입니다.[122] 이란 내각, 이란 의회 의원, 이란 부통령, 하타미 대통령으로 구성된 고위급 대표단이었습니다.[122] 이번 방문은 이란-파키스탄 관계에 새로운 시작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23][124][125] 이는 또한 이란-파키스탄의 미래에 대한 고위급 논의를 허용할 것입니다.인도 파이프라인(IPI) 프로젝트.[126] 하타미 총리는 무샤라프[127][128] 대통령과 자파룰라 칸 자말리 신임 총리를 만나 구체적인 논의를 했습니다.[129][130] 이번 방문에서 이란과 파키스탄 사이에 몇 가지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131] 하타미는 또한 전략학 연구소에서 "문명 간의 대화"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132] 대통령 대표단은 처음에는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했고, 그 다음에는 라호르를 방문했고,[133] 하타미는 알라마 무함마드 이크발 경의 무덤에 경의를 표했습니다.[134] 이란과 파키스탄은 하타미의 방문을 마무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135] 테헤란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타미는 이번 여행을 "긍정적이고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136]
그에 대한 답례로 자말리는 2003년에 공식 방문하여 경제 협력, 지역 안보, 파키스탄과 이란 간의 더 나은 양국 관계를 논의했습니다.[137] 이번 방문에서 자말리는 이란 지도부에게 "국제 원자력 기구(IAEA)와의 협상을 배경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양국 간 경제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에 대해 귀중한 조언을 했습니다.[138]
공관
파키스탄 주재 이란 공사
파키스탄 주재 이란 대사관은 이슬라마바드 주재 이란 대사관입니다. 대사관은 파키스탄 전역에 위치한 많은 영사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139] 이란 정부는 카라치‡, 라호르‡, 퀘타‡, 페샤와르‡ 등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에서 영사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139] 이란 정부는 이슬라마바드에 문화 총영사관, 페르시아 연구 센터, 사다오-시마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139] 그 외에도 라호르†, 카라치†, 라왈핀디†, 페샤와르†, 퀘타†, 하이데라바드†, 물탄의† 문화센터가 있습니다.[139]
- ‡ 임무는 총영사관이라는 뜻입니다.
- † 미션은 Khana-e-Farhang(빛. 문화 센터)임을 나타냅니다.
카라치 메트로폴리탄 법인 부지에 이란항공 법인 사무실도 있습니다.[139]
이란 주재 파키스탄 공관
이란 주재 파키스탄 외교사절단은 테헤란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입니다. 이란 전역에 위치한 총영사관 2곳이 추가로 지원하고 있습니다.[140] 파키스탄 정부는 Mashhad와 Zahidan에 있는 영사관을 지원합니다.[140]
참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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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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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레쉬 다부디 & 아다마 소우: 2007년 파키스탄의 정치적 위기 – EPU 연구논문: Stadtschlaining 2007년 8월 7일호 – 파키스탄과 이란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Research Paper
- 파키스탄이 이란, TRT월드를 맹비난하는 이유
- 파키스탄, 이란, 전력 분야 협력 강화 여명뉴스
- 빠따나야크 박사님, 사티아나라얀 박사님: 이란과 파키스탄의 관계: 전략적 분석 – USI Research Book, 2012년 5월 – 잘 연구된 책은 다양한 국면하에서 이란 파키스탄 관계의 다양한 양상을 분석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