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다다키요
Mizuno Tadakiyo미즈노 다다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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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野忠精![]() | |
![]() 미즈노 다다키요 | |
모나크 | 쇼군 |
야마가타 번 다이묘 1호 | |
재직중 1845–1866 | |
선행자 | 아키모토유키토모 |
성공자 | 미즈노 다다히로 |
하마마쓰 번 다이묘 1호 | |
재직중 1845–1845 | |
선행자 | 미즈노 다다쿠니 |
성공자 | 이노우에마사하루 |
개인내역 | |
태어난 | ) 1833년 2월 5일 |
죽은 | 1884년 5월 8일 도쿄 재팬 | (51)
배우자 | 다나구라 번 이노우에 마사하루의 딸 |
상위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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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다다키요(三野田aki, 1833년 2월 5일 ~ 1884년 5월 8일)는 일본 바쿠마쓰 시대 다이묘로, 도쿠가와 막부에 근무하면서 선임 고문(로주)을 지냈다.
전기
미즈노 다다키요는 하마마쓰 번 다이묘인 미즈노 다다쿠니(松村)의 장남으로 도쿠가와 막부에 근무하고 있는 수석 참의원(로주)이다. 덴포개혁 실패 후 다다쿠니는 정년퇴직과 유배지로 내몰렸고, 1845년 미즈노 일가의 지도부와 하마마쓰 번 다이묘의 지위를 다다키요로 바꾸었다.
그러나, 같은 해, 다다쿠니는 데와 국의 야마가타 번(5만 코쿠)에 재배치되었다. 1851년 아버지를 사면한 뒤 다다쿠니의 운세가 좋아졌다. 쇼군 정권 내에서는 지샤부교(신사·사찰대사)와 와카도시요리(주니어 참의원)의 직책을 받았다. 1862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봉사로 로주가 되었다.
로주로서, 도쿠가와 막부의 일본군 현대화 노력의 일환으로 오구리 다다마사(大田寺)와 함께 요코스카 해군 아스널 건설에 힘썼다.
1866년 도쿠가와 이에모치 쇼군 사망으로 공직생활에서 은퇴하였고, 아들 미즈노 다다히로에게 야마가타에서 계승되었다. 미즈노 다다키요는 다나구라 번에서 동료 로주, 다이묘인 이노우에 마사하리의 딸과 결혼했다.
참조
- 파피노트, 에드먼드 (1906) 어법학자 d'histoire et de géographie du japon. 도쿄: Libarie Sansaisha...디지털화된 1906 Nobiliaire dujapon(2003)에 대한 클릭 링크
- 이 기사의 상당부분의 내용은 일본어 위키백과에 대한 해당 기사의 내용에서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