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랄
USS Rall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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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
이름 | USS 랄 |
빌더 | 마레아일랜드 해군 야드 |
눕다 | 1943년 5월 24일 |
시작됨 | 1943년 9월 23일 |
커미셔닝됨 | 1944년 4월 8일 |
해체됨 | 1945년 12월 11일 |
스트리킨 | 1946년 1월 3일 |
명예와 상을 주다 | 별 3개(제2차 세계대전) |
운명 | 폐기 처분, 1947년 3월 18일 |
일반적 특성 | |
유형 | 에바르트급 구축함 호위함 |
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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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
빔 | 35피트 2인치(10.72m) |
초안 | 11피트(3.4m)(최대) |
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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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 19노트(35km/h; 22mph) |
범위 | 4,150nmi(7,690km) |
보완 | 장교 15명, 사병 183명 |
무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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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랄(DE-304)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의 에바르트급 구축함 호위함이었다.그녀는 일본 잠수함과 전투기로부터 호위함과 다른 배들을 보호하기 위해 태평양으로 보내졌다.그녀는 위험한 전투 지역에서 호위 작전과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했고, 3개의 전투 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1943년 5월 24일에 누워있었고, 9월 23일 캘리포니아주 발레조 마레아일랜드 해군 조선소에서 발사되었으며, 중위의 미망인인 R. R. 랄 부인이 후원했으며, 1944년 4월 8일에 임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극장 작전
랄은 4~5월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셰이크다운과 훈련을 한 데 이어 6월 9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USS시티 달하트(IX-156)를 호위하고 6월 18일 진주만에 도착했다.그 후 3개월 동안 그녀는 태평양 잠수함 훈련 사령부를 지원했다.
1944년 9월 23일, 구축함 호위함은 진주만에서 울리티 아톨의 점령군을 태운 군선을 호위하기 위해 정렬했다.태스크 그룹은 10월 8일 울리티에 도착했고, 나머지 한 달 동안 그곳과 팔라우스에서 임무를 순찰하고 호위하는 데 보냈다.
11월 초, 구축함들은 레이트만 상륙작전에서 돌격선을 지원했던 태스크 그룹 30.8의 유조선들을 보호하는 호위군에서 복무했다.이 임무 동안 그녀는 태풍으로 인한 심한 날씨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랄은 일본 난쟁이 잠수함을 침몰시킨다.
11월 20일 일본 소형 잠수함이 울리티 석호에서 유조선 미시네와(AO-59)를 어뢰로 격침시켰다.랄은 석호의 잔잔한 물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현장에 깊이 충전 패턴을 배치한 뒤 파편과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잠수함을 침몰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침입 작전 지원
12월 초순 순찰 임무에 이어 랄과 할로란(DE-305)은 호위함 2척을 해군 제도로 호송한 뒤 울리티로 돌아갔다.12월 14일 랄은 다른 배들과 함께 그 환초에서 정리한 후 크리스마스에 맞춰 하와이에 도착했다.
랄은 마우이와 카훌라웨에서 이우지마 폭격을 준비하며 침략 리허설을 한 후 1945년 2월 26일 섬 점령을 위해 수비대를 호위하는 호위대의 부대로 진행되었다.수송선과 호위대는 3월 21일에 도착하여 육군 점령 부대를 상륙시켰다.그러자 랄은 돌격부대를 태운 수송대를 호위하여 사이판으로 돌아갔다.그곳에서 그녀는 뉴헤브리데스의 에스피리투 산토에 도착하여 3월 19일에 도착했다.
오키나와 침공을 위해 제27보병사단인 플로팅 리저브(Floating Reserve)를 실은 수송선들의 선별선으로 배정된 DE-304는 3월 25일 울리티와 류큐스를 위해 에스피리투 산토에서 정렬했다.도중 호송대가 정체불명의 잠수함 접촉을 했고, 랄의 망루는 호송 경로에 떠 있는 기뢰를 발견해 포탄으로 폭파시켰다.태스크 그룹은 4월 9일 오키나와 앞바다에 도착했고 랄은 이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1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검열소를 탔다.다음 며칠은 공습경보를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일본 가미카제 항공기 공격
1925년 4월 12일, 그 배는 General Quadies로 갔다.이후 3시간 동안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미군 침공함대가 사망하고 피해를 입으면서 14건의 개별 공습을 추적했다.일본 항공기 5대의 급습이 랄의 구역으로 접근했다.구축함 호위함의 포병들이 가미카즈 3개를 튀기며 발포하기 시작했다.4번째는 순양함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5번째는 불타는 스크린을 뚫고 나갔고, 파손되고 불붙은 비행기는 우현 쪽의 호위함을 후방으로 들이받았다.비행기 밑으로 500파운드의 폭탄이 날아와 좌현에서 약 15피트 떨어진 상공에서 폭발했다.자살기 폭발과 화재는 또 다른 파도의 전투기의 스트래핑 공격과 결합되어 21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하는 큰 피해를 초래했다.신속한 피해대책으로 화재는 진압되고 임시 수리에 착수했다.랄은 하구시 해변 정박지로 들어가 부상자 대부분이 이송된 핑크니(APF-2)와 나란히 정박했다.죽은 사람들은 다음날 아침 오키나와에 묻히기 위해 제거되었다.
가미카제 파업으로 회복
최초 수리 후, ComCortDiv 61은 페넌트를 Finnegan(DE-307)으로 옮겼고, 랄은 4월 15일 케라마 레토 앵커리지로 출발했다.그녀는 4월 23일에 울리티에 도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추가 구조 수리에 이어 마지막으로 울리티를 떠나 5월 18일 워싱턴 시애틀에 도착했다.
종전선언 활동
수리 및 정비를 마친 배는 7월 12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향했다.랄은 현재 진행 중인 보수교육을 마치고 7월 28일 샌디에이고를 떠나 8월 5일 진주만에 도착했다.훈련은랄이 산 페드로, 로스엔젤레스, 파나마 운하를 거쳐 동해안으로 항해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전후 해체
9월 24일 찰스턴 해군 야드에 도착한 그녀는 1945년 12월 11일 해체를 당했고, 1946년 1월 3일 해군 함정 등록부에서 강타를 당했다.그녀의 헐크는 1947년 3월 18일에 고철용으로 팔렸다.
수상
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해 세 개의 전투별을 얻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는 USS 랄(DE-304)과 관련된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다. |
참조
- 이 글에는 공용 도메인에서 온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다.미국 해군 전투함 사전이 항목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외부 링크
- NavSource Navy History에 있는 USS Rall(DE-304)의 사진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