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루말라 벤카테스와라 사원의 역사
History of Tirumala Venkateswara Temple다음에 대한 시리즈 일부 |
힌두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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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카테스와라 사원은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치토오르 지구의 티루말라 언덕 마을에 위치한 바이슈나비트의 중요한 사원이다. 신전은 비슈누의 화신인 벤카테츠와라 경에게 바쳐지고 있는데, 그는 칼리 유가의 시련과 괴로움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원은 세샤찰람 언덕의 일부인 티루말라 언덕의 높이 853m에 위치하고 있으며 드라비디아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중세사
최초로 기록된 기부금은 966년 CE에 팔라바 여왕 사마바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녀는 많은 보석과 두 필지의 토지(10에이커와 다른 13에이커)를 기부하고, 그 땅에서 발생한 수입을 사찰의 주요 축제의 축제에 쓰도록 명령했다.[1] 팔라바 왕조(9세기), 초라 왕조(10세기), 비야야나가라 프라다한스(14~15세기)는 벤카테츠와라 공의 헌신적인 신자였다. 이 사원은 다이아몬드와 금의 기부로 비자야나가라 제국 하에서 현재의 부와 크기의 대부분을 얻었다.[2] 1517년 비야야나가라 황제 크리슈나데바라(Crishnadevaraya)가 신전을 여러 차례 방문한 가운데 금과 보석을 기증하여 아난다 닐라야암(내부 신사) 지붕을 금도금할 수 있게 하였다. 비야야나가라 제국이 쇠퇴한 후, 미소르 왕국과 갓왈 삼스타남과 같은 주의 지도자들은 순례자로서 예배를 드리고, 신전에 장식품과 귀중품을 드렸다. 마라타 장군 라호지 1번즐레(1755년 사망)가 사원을 찾아 사원에서 예배를 행하는 상설 행정관을 세웠다.[citation needed][3]
현대사
비야야나가라 제국의 황혼이 끝나고 1656년 7월에 골콘다의 손에 들어갔고, 그 후 잠시 동안 프랑스 지배를 받았고, 1801년까지 카르나틱의 나워브 지배를 받았다.
15세기 동안
서기 1417년 찬드라기리의 주민 마드하바다사가 가르바그리하의 방아루 바킬리 앞에 있는 티루마니 만다팜을 건설하였다.[4]
16세기 동안
AD 1535년, 페다 티루말라차랴는 템플 탱크와 아디바라하 사당을 개조했다.[4]
19세기 동안
19세기 초 영국의 등장으로 사원의 경영은 사원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사원의 활동에 간섭을 피한 동인도 회사의 손에 넘어갔다.[5] 마드라스 정부는 1817년 규정 7호를 통과시켰고, 이 조항은 노스아코트 지구의 수집가를 통해 이 사원을 세입위원회에 넘겼다.[5] 1821년 영국의 브루스는 브루스 강령이라고 불리는 템플의 관리를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5]
1843년 동인도 회사는 티루파티에 있는 다른 사원들과 함께 사원의 행정부를 하티람지 무스의 마하탄트에게 양도했고, 그는 비카라나카르타스 역할을 했다.
20세기 동안
사원은 1933년 TTD법의 결과로 티루말라 티루파티 데바스타남스가 결성되기 전까지 6대에 걸쳐 마하탄의 지배를 받았다.[6] 1933년 법은 1951년 마드라스 힌두교 종교 및 자선 기부법으로 대체되었다.[7] 1966년에 다시 이 사원은 안드라프라데시 주 기부부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안드라 프라데시 자선단체와 힌두교 종교 기관 및 기부 단체들이 이 법을 시행하였다.[7] 1979년 새로운 티루말라 티루파티 데바스타남스 법으로 1966년 제정된 법안으로, 안드라프라데시 정부가 지명하는 집행위원, 의장, 기타 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신전행정이 부여되었다.[7]
경구적 기록
이 사원의 벽에는 역사, 문화, 언어에 중요한 몇 가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언덕 사원과 로어 티루파티와 티루차누르의 신전에 새겨진 글의 수는 천 개가 넘는다. 사찰 벽에 새겨진 초기 글씨가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사라졌다는 증거가 있다. 사찰 벽면에는 무려 640여 개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것들은 티루파티 내와 주변의 다른 관련 신전에서 발견된 비문과 함께 티루말라 티루파티 데바스타남스에 의해 출판된다. 모든 비문은 칸나다, 산스크리트, 타밀, 텔루구에 있다.[8]
또한 사찰에는 탈라파카 안나마차랴의 텔루구 산키르타나와 그의 후손들이 새겨진 약 3,000개의 동판이 독특한 소장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음악학자들에게 중요한 것 외에도 텔루구의 역사 언어학자에게 귀중한 자료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필요하다]
남인도의 거의 모든 중요한 왕조의 후원 아래 이 신성한 티루말라 신전은 모든 혜택과 영광을 누렸다. The Pallavas, the Cholas, the Pandyas, Kadavarayas, Yadavarayas, Telugu Cholas, Telugu Pallavas, Vijayanagara kings (Sangama, Saluva and Tuluva lines) have left the marks of their patronage and endowments on the walls of the temples of Tirumala and Tirupati.[9]
참조
- ^ 페미니즘 및 세계 종교 1999, 페이지 48. 대상
- ^ Dr. N.Ramesan (1981). The Tirumala Temple. Tirumala: Tirumala Tirupati Devasthanams.
- ^ "Tirumala Tirupati Devasthanams: Temple Histor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12 April 2012. Retrieved 15 July 2011.
- ^ a b Kameswara Rao, V. (1986). Temples in and Around Tirupati.
- ^ a b c V.K, Bhaskara Rao (1992). Organisational and Financial Management of Religious Institutions: With Special Reference to Tirumala Tirupati Devasthanams (TTD). Deep and Deep Publications. pp. 52, 53. ISBN 81-7100-441-5.
- ^ Koutha, Nirmala Kumari (1 January 1998). History of the Hindu Religious Endowments in Andhra Pradesh. Northern Book Centre. p. 124. ISBN 81-7211-085-5.
- ^ a b c Koutha, Nirmala Kumari (1 January 1998). History of the Hindu Religious Endowments in Andhra Pradesh. Northern Book Centre. p. 136. ISBN 81-7211-085-5.
- ^ "Archived cop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8 December 2015. Retrieved 22 October 2015.CS1 maint: 제목으로 보관된 복사본(링크)
- ^ "Tirumala Tirupati Devastanamulu". Tirumala.org.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6 August 2002. Retrieved 17 June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