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역사 연표
Timeline of Spanish history이것은 스페인 역사의 연대표이며, 스페인과 그 이전 국가에서의 중요한 법적, 영토적 변화와 정치적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이러한 이벤트의 배경에 대해서는, 스페인의 역사를 참조해 주세요.
8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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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 아스투리아스의 비시고딕 귀족 펠라기우스는 우마이야드 칼리프 왕국에 반기를 들었다. | |
722 | 여름 | 코바동가 전투:펠라기우스에게 충성하는 군대는 그들을 탈환하기 위해 피코스 데 유로파의 계곡에 파견된 우마이야드 군대를 격파했다. |
펠라기우스는 칸가스 데 오니스를 수도로 하여 독립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자로 선출되었다. | ||
737 | 펠라기우스는 죽었다.그는 아스투리아스의 아들 파빌라에 의해 왕위 계승되었다. | |
739 | Favila는 사냥하다가 곰에 의해 죽었다.그는 칸타브리아 공작인 칸타브리아의 베드로의 아들인 그의 처남인 아스투리아스의 가톨릭 신자 알폰소 1세가 뒤를 이었다. | |
740 | 아스투리아스는 갈리시아를 정복하고 합병했다. | |
757 | 카톨릭 신자 알폰소가 죽었다.그의 아들 아스투리아스의 잔혹한 프렐라 1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 |
768 | 1월 14일 | 프루엘라는 암살당했다. |
프루엘라의 사촌 아스투리아스의 아우렐리우스가 아스투리아스의 왕위에 올랐다. | ||
774 | 아우렐리우스는 죽었다.그는 카톨릭의 딸 아도신다의 남편인 그의 사촌인 아스투리아스의 사일로에 의해 계승되었다.사일로가 프라비아에 그의 수도를 세웠습니다. | |
783 | 사일로가 죽었어 | |
아도신다는 프루엘라의 아들인 그녀의 조카 알폰소 2세를 아스투리아스의 왕으로 선출하도록 계획했다. | ||
귀족들의 연합은 가톨릭의 사생아 알폰소를 아스투리아스의 왕 마우레가투스로 선출했다.알폰소 더 체스트는 알라바로 도망쳤다. | ||
789 | 모레가투스는 죽었다. | |
아우렐리우스의 형제인 집사 베르무도 1세는 아스투리아스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 ||
791 | 부르비아 강 전투: 아스투리아 군대가 코르도바로 돌아오는 길에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근처에서 코르도바 군대를 공격했다가 패배했습니다. | |
베르무도가 왕위를 물러났다. | ||
9월 14일 | 알폰소 1세는 스페인 톨레도에 있는 아스투리아스의 왕위에 올랐다. | |
알폰소 더 체스트는 오비에도에 그의 수도를 세웠다. | ||
794 | 루토스 전투: 현대 알라바의 초토화 작전에서 돌아온 코르도반 군대가 아스투리아군에 의해 전멸했다. | |
795 | 9월 18일 | 라스바비아스 전투:코르도바는 스페인 아스토르가 근처에서 아스투리아 군대를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
9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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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 판코르보 전투(816년): 코르도바는 판코르보에서 피레네 산맥의 바스크 고향을 방어하는 바스크-아스터 군대를 학살했다. | |
824 | 론체보 고개 전투(824년): 코르도바 토후국의 바스크와 바누 카시의 연합군이 론체보 고개에서 카롤링거의 군사 원정을 격파했다.팜플로나의 바스크 족장 이지고 아리스타는 팜플로나에서 나바라의 왕위에 올랐다. | |
842 | 정숙한 알폰소가 죽었다. | |
아스투리아의 귀족들은 알폰소의 친척인 아스투리아스의 네포티아누스를 왕으로 선출했다. | ||
코넬라나 다리 전투:베르무도의 아들 아스투리아스의 라미로 1세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오늘날의 아스투리아스 살라스에서 네포티아누스를 물리쳤다. | ||
850 | 2월 1일 | 라미로는 죽었다.그는 오비에도 아스투리아 왕의 판테온에 묻혔다.그의 아들 오르도뇨 1세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851 | 알벨다 전투 (851) :오르도뇨는 북동쪽 아스투리아스에서 바스크 반란을 진압하고 알벨다 근처에서 기회주의적인 코르도바 침략을 추방했다. | |
이지고는 죽었다.그는 그의 아들 팜플로나의 가르시아 이뇨스가 나바라 왕위를 계승했다. | ||
852 | 과달라세테 전투:스페인 톨레도 사람들의 반란을 지원하기 위해 도착한 아스투리아군과 팜플로난군은 코르도반군에 의해 격퇴되었다. | |
859 | 바이킹들은 가르시아를 생포하고 그의 귀환을 위해 나바라로부터 약 7만 디나르의 몸값을 갈취했다. | |
860 | 코르도반군은 나바라 밀라그로 팜플로나의 수도사 포르툰 가르세스를 생포했다. | |
862 | 아스투리아스의 동쪽 행진은 카스티야의 로드리고 백작의 통치하에 카스티야 백국을 만들었다. | |
865 | 8월 9일 | 모르쿠에라 전투: 코르도바는 아스투리아스를 공격하여 아스투리아스 군대와 카스티야 동맹군을 에브로 계곡을 따라 후퇴시켰다. |
866 | 5월 27일 | 오르도뇨는 죽었어그는 아스투리아스 대왕의 장남 알폰소 3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
프루엘라는 아스투리아스의 왕위를 빼앗고 알폰소 대왕을 카스티야로 피신시켰다. | ||
프루엘라는 오비에도에서 암살당했다. | ||
868 | 아스투리아스는 포르토를 정복했다.비마라 페레스는 포르투갈 백작이 되었다. | |
870 | 가르시아가 죽었어팜플로나의 가르시아 히메네즈가 섭정으로서 권력을 잡았고, 가르시아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포르툰 가르케스는 코르도바에 감금되어 있었다. | |
873 | 11월 5일 | 로드리고는 죽었다.그는 그의 아들 디에고 로드리게스 포셀로스에 의해 카스티야 백작의 뒤를 이었다. |
878 | 아스투리아스는 코임브라를 정복했다. | |
882 | 제1차 첼로리고 전투:알라바 아스투리아 백작 벨라 히메네스는 셀로리고에 있는 중요한 산길을 코르도바 토후국이 정복하려는 시도를 물리쳤다. | |
포르툰 가르케스는 나바라의 통치로 돌아왔다. | ||
883 | 제2차 첼로리고 전투:벨라 히메네즈는 코르도바 토후국이 셀로리고에 있는 중요한 산길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물리쳤다. | |
885 | 1월 31일 | 로드리게스는 죽었다. |
10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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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 | 7월. | 사모라의 날:스페인 사모라의 아스투리아인 수비대는 이곳을 정복하려는 코르도바군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포위자의 머리가 성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
905 | 나바르 귀족들은 포르툰 가르케스를 왕좌에서 몰아내고 팜플로나의 산초 1세를 왕좌에서 물러나게 했다. | |
910 | 12월 20일 | 알폰소 대왕은 죽었고 오비에도 성당에 묻혔다.그의 왕국은 그의 세 아들에게 분할되었고, 그의 장남인 레온의 가르시아 1세는 레온을, 레온의 오르도뇨 2세는 갈리시아를, 아스투리아스의 프루엘라 2세는 카스티야를 포함한 아스투리아스를 받았다. |
914 | 1월 19일 | 가르시아 1세는 죽었다.그의 땅은 오르도뇨 2세에게 넘어갔다. |
917 |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즈 전투(917년): 레오나스 군대는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즈의 코르도반 포위망을 뚫었다. | |
920 | 7월 26일 | 발데준케라 전투: 카스티야를 침공한 코르도바 군대가 발데준케라에서 레오네-나바르 연합군을 격파했고, 아마도 현대의 에스텔라-리자라와 팜플로나 사이에 있을 것이다.클루니아의 레온에 의해 포기되었다. |
922 | 나바레는 전투에서 아라곤 백작 갈린도 아즈나레스 2세를 물리치고 그를 속국으로 내몰았다. | |
924 | 6월. | 오르도뇨 2세는 죽었다. |
레오나 귀족들은 프루엘라 2세를 레온의 왕으로 선출했다. | ||
925 | 7월. | 프루엘라 2세는 나병으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그의 유언장은 그의 아들 알폰소 프롤라즈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그러나 오르도뇨 2세의 아들 산초 오르도네즈, 레온의 수도사 알폰소 4세, 레온의 라미로 2세는 프롤라즈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갈리시아에서만 사실상 그에게 권력을 주었다. |
프루엘라 2세의 남동생인 라미로는 그의 미망인 우라카 빈트 압드 알라와 결혼하여 왕실 칭호를 주장했다. | ||
오르도네즈, 수도사 알폰소, 라미로 2세는 프롤라즈를 아스투리아스의 동쪽 행군으로 추방시켰다. | ||
오르도네즈는 스페인의 레온을 점령했다. | ||
수도승 알폰소는 나바르와 레오나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오르도네스를 스페인 레온에서 추방했다. | ||
12월 10일 | 산초 1세는 죽었다.그의 어린 아들 가르치아 산체스 1세와 그의 동생 히메노 가르체스 팜플로나가 섭정을 맡았다. | |
926 | 오르도네즈는 갈리시아의 왕위에 올랐다. | |
929 | 8월 16일 | 오르도네즈는 죽었다.그의 영토는 수도사 알폰소에게 넘어갔다. |
931 | 카스티야의 페르난 곤살레스는 카스티야의 백작이 되었다. | |
란타론과 알라바의 백작 알바로 헤라멜리스가 죽었다.페르난 곤살레스는 자신의 영토를 상속받아 카스티야와 통합했다. | ||
5월 29일 | 히메노 가르체스는 죽었다. | |
수도승 알폰소는 레온과 갈리시아의 통치를 그의 형제 라미로 2세에게 양도할 수 밖에 없었다. | ||
939 | 7월 19일 | 시만카스 전투:시만카스 부근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이 전투는 레오네스와 나바르 연합군이 두로강 주변의 코르도바 정복 시도를 격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8월 5일 | 알한디치 전투: 코르도반 군은 양측에 큰 희생을 치르고 스페인의 레오나 도시 사모라를 정복했다. | |
951 | 1월 1일 | 라미로 2세는 레온의 산 이시도로 바실리카에 묻혔다.그는 레온의 아들 오르도뇨 3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
956 | 오르도뇨 3세는 스페인의 사모라에서 죽었다.그의 이복형제 산초 1세가 뒤를 이었다. | |
958 | 페르난 곤살레스가 이끄는 레오나 귀족들은 수도승의 아들인 오르도뇨 4세 오르도뇨를 위해 지방 산초를 폐위시켰다. | |
960 | 뚱뚱한 산초는 나바르와 코르도바의 지원으로 레온의 왕좌를 되찾았다. | |
966 | 뚱뚱한 산초는 포르투갈의 곤살로 메넨데스 백작에 의해 독살되어 레온의 산 이시도로 바실리카에 묻혔다.레온의 어린 아들 라미로 3세가 뒤를 이었고, 레온의 고모 엘비라 라미레스와 어머니 테레사 안수레즈가 섭정으로서 통치했다. | |
970 | 2월 22일 | 가르시아 산체스 1세는 죽었다.그는 팜플로나의 장남 산초 2세에 의해 계승되었다.비게라 주변의 작은 영토에서 그는 비게라 왕국으로 다른 아들에게 유언했다. |
페르난 곤살레스는 죽었다.그는 카스티야의 하얀 손의 아들 가르시아 페르난데스에 의해 카스티야 백작의 뒤를 이었다. | ||
981 | 7월 9일 | 토레비센테 전투: 코르도반군은 반란군 코르도반 장군과 그의 비게란과 카스티야 동맹, 아마도 아티엔자 근처에게 유혈 패배를 안겨주었다. |
루에다 전투: 코르도반군이 바야돌리드 루에다에 있는 레오네스와 나바르 연합군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 ||
982 | 10월 15일 | 갈리시아 귀족들은 오르도노 3세의 아들 베르무도 2세를 코르도바 칼리프의 지원으로 갈리시아의 레온 왕 구티로 칭송했다. |
984 | 베르무도는 라미로 3세를 폐위시키고 그를 대신하여 레온의 왕이 되었다. | |
987 | 레온은 스페인 사모라에서 코르도바군을 추방했다. | |
991 | 11월 | 레오네스의 귀족들은 베르무도를 왕국에서 추방했다. |
992 | 9월. | 베르무도는 레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994 | 산초 2세는 죽었고 산 후안 데 라 페냐에 묻혔다.그는 그의 아들 팜플로나의 가르시아 산체스 2세에 의해 나바라의 왕이자 아라곤 백작의 자리를 승계받았다. | |
995 | 그럴지도 모른다 | 페르난데스는 코르도반 급습대에 붙잡혔다. |
6월. | 페르난데스는 메디나셀리에서 상처로 죽었어요카스티야 성법의 아들 산초 가르시아가 그의 뒤를 이었다. | |
996 | 코르도바는 스페인 아스토르가의 레오나 도시를 정복했다. | |
999 | 카스티야는 코르도바에게 매년 공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다. | |
9월. | 베르무도는 죽었다.카스티야의 어머니 엘비라와 포르투갈 백작이자 갈리시아 공작 메넨도 곤살레스가 섭정 역할을 하면서 그의 어린 아들 알폰소 5세가 뒤를 이었다. | |
1000 | 7월 29일 | 케르베라 전투: 코르도바는 현대 에스피노사 데 케르베라 근교 징벌 원정에서 성법의 가르시아와 살다냐 백작 가르시아 고메스의 연합군을 물리쳤다. |
가르시아 산체스 2세는 죽었다.팜플로나의 산초 3세가 아라곤의 왕위를 계승하였고, 팜플로나의 산초 3세의 어머니 히메나 페르난데스와 할머니 우라카 페르난데스는 나바라 주교들을 섭정으로 통치하였다. |
11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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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 칼리프 히샴 2세가 이끄는 코르도바 군대가 스페인의 사모라를 정복하기 위해 레온을 침공했다. | |
비게라의 왕 가르시아 라미레스는 남자 후계자 없이 죽었다.그의 영토는 나바라에게 흡수되었다. | ||
1008 | 10월 6일 | 메넨도 곤살레스는 죽었다.알폰소 대제는 성년이 되었다. |
1009 | 히샴은 그의 사촌인 코르도바의 무함마드 2세에 의해 전복되고 투옥되었다. | |
11월 1일 | 술레이만 이븐 알 하캄은 불만을 품은 베르베르 군대의 선두이자 성법의 가르시아의 도움으로 무함마드를 물리쳤고, 무함마드는 스페인의 톨레도로 도망쳐 히샴을 해방시켰다. | |
1011 | 산초 대왕은 카스티야의 딸 무니아도나와 결혼했다. | |
1015 | 산초 대왕은 소브라베 백국을 정복했다. | |
1017 | 2월 5일 | 좋은 법의 가르시아가 죽었어그는 카스티야의 어린 아들 가르시아 산체스가 카스티야와 알라바의 백작위를 계승하였고, 카스티야의 고모이자 페르난데스의 딸인 코바루비아스의 우라카가 카스티야의 귀족의 섭정을 맡았다. |
1018 | 산초 대왕은 리바고르자 백국의 절반을 합병했다. | |
1025 | 팔라스 주사와 리바고르자 백작인 팔라스 주사의 레이몽 3세는 그의 신하로서 산초 대왕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 |
1028 | 8월 7일 | 알폰소 대제가 죽었습니다그는 레온의 아들 베르무도 3세에 의해 레온의 왕위를 계승했다. |
1029 | 가르시아 산체스는 스페인 레온에서 그가 세아와 피수에르가 사이의 땅에서 쫓아낸 귀족의 아들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 |
산초 대왕은 페르디난도 1세를 카스티야 백작으로 임명했다. 페르디난도 1세는 그의 아들이자 성법학자 가르시아의 손자였다. | ||
1031 | 망명 중인 코르도바의 칼리프였던 코르도바의 히샴 3세는 지방 귀족들에 의해 전복되고 그의 칭호는 폐지되어 알 안달루스의 타이파로부터 즉시 독립하게 되었다. | |
1032 | 알폰소 노블의 딸 산차는 페르디난드 대제와 결혼했다. | |
1034 | 나바레는 스페인의 레온을 정복했다.베르무도 3세는 현대의 갈리시아로 도망쳤다. | |
1035 | 10월 18일 | 산초대왕은 죽었다.그의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할되었다.소브라베와 리바고르자의 곤살로는 소브라베와 리바고르자를 받았다.아라곤의 사생아 라미로 1세는 집행관의 칭호와 아라곤의 일부 재산을 받았다.팜플로나의 가르시아 산체스 3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바라 왕이 되었고 그의 형제들에 대한 종주권을 보유했다. |
타팔라 전투: 가르시아 산체스 3세는 라미로 1세의 왕국 침략을 격퇴했다. | ||
1037 | 9월 4일 | 타마론 전투: 레온의 베르무도 3세는 말에서 떨어져 페르디난드 대왕에게 충성하는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
1038 | 6월 22일 | 페르디난드 대왕은 스페인 레온의 레온과 카스티야의 왕위에 올랐다. |
1043 | 6월 26일 | 소브라베와 리바고르자의 곤잘로는 그의 기사 중 한 명에게 암살당했다. |
라미로 1세는 소브라베와 리바고사를 합병했다. | ||
1054 | 9월 1일 | 아타푸에르카 전투: 나바레스와 레오네스의 군대는 부르고스 지방의 아타푸에르카 근처에서 만났다.가르시아 산체스 3세와 그의 가정교사 포르툰 산체스가 살해되었다.가르치아 산체스 3세의 아들 산초 4세는 나바라 여왕 스테파니의 섭정 하에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레온은 에브로 남쪽의 나바라 영토를 합병했다. |
1056 | 페르디난트 대제는 자신을 임페라토르 토티우스 히스파니아에 왕좌에 앉혔다. | |
1058 | 5월 25일 | 스테파니가 죽었어요 |
1062 | 12월 29일 | 페날렌의 산초와 페르디난드 대제는 국경을 정의하는 조약에 서명했다. |
1063 | 자카 총회 (1063) :라미로 1세는 우에스카 교구를 재건한 자카에서 시노드를 주재했다. | |
5월 8일 | 그라우스 전투: 라미로 1세는 사라고사의 타이파에서 그라우스를 빼앗으려다 실패했다.그의 후계자는 아들 산초 라미레즈였다. | |
1064 | 8월 | 바르바스트로 십자군:교황 알렉산데르 2세의 권유로 아라곤, 우르겔, 아키텐, 교황령 연합군이 레리다의 타이파에서 바르바스트로를 정복했다. |
1065 | 파테나 전투: 페르디난트 대왕의 군대를 추격하던 발렌치아군은 발렌시아 포위 실패에서 후퇴하여 파테나에서 매복하여 전멸하였다. | |
12월 24일 | 페르디난드 대왕이 죽었다.그의 왕국은 세 자녀에게 분할되었다.맏형 산초 2세는 카스티야와 레온의 강자로 카스티야를 받았다.레온은 갈라졌고, 갈리시아는 갈리시아의 가르시아 2세에게 갔고, 나머지는 용사 알폰소 6세, 레온과 카스티야의 발리안트에게 돌아갔다. | |
삼초 전쟁: 강자 산초는 나바라에 국경 공격을 명령하기 시작했다. | ||
1067 | 삼초 전쟁:전쟁은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카스티야는 현재의 알라바, 몬테즈 데 오카, 판코르보, 부르고스, 라 리오하에 있는 나바르제 영토를 계속 소유하고 있었다. | |
1068 | 봄 | 용사 알폰소가 바다호스의 타이파를 침략했다. |
7월 19일 | 란타다 전투:산초 더 스트롱은 현대 멜가르 드 페르난탈 근처의 바다호즈의 타이파에서 용맹한 알폰소를 물리쳤습니다. | |
1071 | 6월. | 강자 산초와 용자 알폰소는 각각 북쪽과 남쪽에서 갈리시아를 침공하여 왕국을 분할하고 가르시아 2세를 세비야로 추방하였다. |
1072 | 1월 | 골페제라 전투: 강자 산초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근처에서 용맹한 알폰소를 격파하고 포로로 잡았습니다.후자는 풀려나 톨레도로 유배되었다. |
1월 12일 | 강한 산초는 레온의 왕위에 올랐다. | |
10월 7일 | 강자 산초는 스페인의 사모라에 대한 공격 중에 사모란 귀족에게 배신당하고 살해당했다. | |
용자 알폰소는 그의 동생 산초의 뒤를 이어 레온과 카스티야의 왕이 되었다. | ||
1074 | 톨레도와 그라나다의 타이파들은 용감한 알폰소에게 파리아를 지불해야만 했다. | |
1076 | 6월 4일 | 페날렌의 산초는 그의 형제 자매에 의해 페날렌의 절벽에서 던져졌다.용감한 알폰소는 그의 어린 아들 가르시아 산체스를 후계자로 인정했다. |
나바르 귀족들은 산초 라미레즈를 왕으로 선출했다.후자는 용감한 알폰소에게 나바라의 서쪽의 영토를 양도했다. | ||
사라고사의 에미르는 용감한 알폰소에게 파리아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 ||
1077 | 용사 알폰소는 임페라토르 토티우스 히스파니아라는 칭호를 얻었다. | |
1079 | 카브라 전투: 세비야는 그라나다의 침략군을 물리쳤다.양쪽 모두 카스티야 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 |
용사 알폰소가 코리아를 정복했어, 카세레스 | ||
1083 | 4월 28일 | 산초 라미레스는 그라우스를 정복했다. |
항복의 구실로, 사라고잔의 거점인 루에다 데 잘론 성의 점거자들은 레온의 중요한 귀족들을 성으로 불러들여 살해했다. | ||
1084 | 8월 14일 | 모렐라 전투: 엘 시드 장군이 이끄는 사라고잔 군대는 토르토사 근처에서 산초 라미레스의 군대를 결정적으로 물리쳤다. |
12월 25일 | 피에드라 피사다 전투:사라고잔의 군대는 용감한 알폰소의 군대와 교전을 벌였고, 이후 해군, 우에스카에서 엘 그라도로 이어지는 신카 계곡을 따라갔다. | |
1085 | 5월 25일 | 용사 알폰소는 스페인의 톨레도를 정복했다. |
용사 알폰소는 현대의 마드리드를 정복했다. | ||
1086 | 3월 | 용감한 알폰소 1세는 그의 신하 알 카디르를 발렌시아의 왕으로 임명했다. |
10월 23일 | 사그라하스 전투:알모라비드 왕조의 술탄인 유수프 이븐 타슈핀은 안달루시아 타이파스 연합군의 수장으로 바다호스 근처에서 벌어진 유혈 전투에서 레온, 카스티야, 아라곤을 물리쳤다.타이파들은 파리들의 지불을 포기했다. | |
1087 | 투델라 공성전:용자 알폰소, 산초 라미레스, 부르고뉴 공작 오도 1세, 멜룬 자작 윌리엄은 나바라 투델라의 사라고잔 요새를 포위했다. | |
산초 라미레스는 에스타다를 정복했다. | ||
1088 | 산초 라미레즈는 몬테라곤 성을 점령했다. | |
1089 | 6월 24일 | 산초 라미레즈는 몬손을 정복했다. |
1090 | 유수프는 발렌시아의 왕을 전복시키고 그를 추방했다. | |
1094 | 6월 4일 | 산초 라미레즈는 우에스카 공성전에서 죽었다.그는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위를 그의 장남인 페드로 1세와 팜플로나에 의해 계승되었다. |
6월. | 엘 시드는 스페인의 발렌시아를 재탈환하여 카스티야를 향해 갔다. | |
11월 | 알폰소 용사는 알모라비드 정복에 의해 리스본, 신트라, 그리고 포르투갈의 산타렘을 잃었다. | |
1095 | 3월 16일 | 교황 우르바노 2세는 그의 명시적 승인 없이 피터 1세나 그의 여왕 아키텐의 아그네스, 아라곤과 나바라의 여왕을 파문하는 것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했다. |
1096 | 알코라즈 전투:피터 1세는 우에스카에 대한 포위를 완화하기 위해 보내진 사라고잔 군을 물리쳤다. | |
11월 27일 | 피터 1세는 우에스카를 정복했다. | |
1097 | 바렌 전투: 알모라비드 세력과 지중해 사이에 낀 아라곤 군대는 현대의 간디아 근처에서 그들의 적을 격퇴했다. | |
8월 15일 | 콘수에그라 전투:알모라비드 군대가 콘수에그라 근처에서 용사 알폰소의 군대 중 하나를 격파했다. | |
8월 16일 | 페테르 1세는 아라곤의 베르타와 우에스카에서 결혼하여 아라곤의 수도를 자카로부터 양도받았다. |
12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102 | 용감한 알폰소는 알모라비드의 위협에 맞서 발렌시아를 대피시키고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 |
1104 | 용사 알폰소는 알모라비드 도시 메디나셀리를 정복했다. | |
피터 1세는 죽었다.그는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위를 그의 형제인 아라곤의 배틀러 알폰소 1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 ||
1105 | 배틀러 알폰소는 알모라비드의 도시 에제아 데 로스 카발레로스와 토스테를 정복했다. | |
1107 | 배틀러 알폰소는 알모라비드 왕조의 타마리테 드 리테라와 산 에스테반 드 리테라를 정복했다. | |
1108 | 5월 29일 | Uclés 전투 (1108)알모라비드는 유클레스에서 용감한 알폰소의 군대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고, 도시와 스페인의 쿠엔카, 스페인의 휴에테, 그리고 오카냐를 정복했다.용사 알폰소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산초 알폰세즈는 현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비행 중 살해되었다. |
1109 | 7월 1일 | 용사 알폰소는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죽었다.그의 딸 레온의 안절부절못하는 우라카가 레온과 카스티야의 여왕으로 그의 뒤를 이었다. |
10월 | 안절부절못하는 우라카는 배틀러 알폰소와 결혼했다. | |
1111 | 10월 26일 | 칸데스피나 전투:포르투갈 백작 앙리도 합류한 배틀러 알폰소는 프레즈노 데 칸테스피노에서 전 부인 우라카 더 안절부절못하는 군대를 물리쳤다. |
가을 | 비아당고스 전투:귀족 페드로 프롤라즈 데 트라바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교구 대주교 디에고 겔미레즈는 안절부절못하는 우라카를 지지하며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에서 바틀러 알폰소가 이끄는 우세한 군대에 의해 격퇴되었다. | |
1112 | 교황 파스칼 2세는 안절부절못하는 우라카와 배틀러 알폰소의 결혼을 무효화했다.두 사람은 휴전에 합의했다. | |
1117 | 배틀러 알폰소는 알모라비드의 도시인 피테로, 벨히테, 코렐라, 스페인, 신트루엔니고, 무르칸테, 몬테아구도, 나바라, 그리고 카산테를 정복했다. | |
1118 | 십자군 포고 이후 프랑스 병사들과 함께 알무데바르, 구레아 데 갈레고, 주에라를 정복하고 사라고사를 포위했다. | |
12월 18일 | 배틀러 알폰소는 사라고사를 정복했다. | |
1119 | 알폰소 더 배틀러는 알모라비드 왕조의 세르베라, 투데옌, 카스텔론, 타라조나, 아그레다, 마갈론, 보르자, 사라고사, 노비야스, 말렌, 루에다, 바야돌리드, 에필라를 정복했다. | |
1120 | 쿠탄다 전투:배틀러 알폰소는 칼라모카 근처의 쿠탄다에서 알모라비드 왕조의 군대를 물리치고 칼라타유드와 다로카뿐만 아니라 아라곤을 향해 마을을 정복했다. | |
배틀러 알폰소는 칼라타유드, 부비에르카, 알하마 데 아라곤, 아리자, 사라고사, 다로카의 알모라비드 도시를 정복했다. | ||
1122 | 배틀러 알폰소는 무슬림과의 전쟁에 전념하는 벨카이트의 군사 조직인 벨카이트 공성회를 설립했습니다. | |
1123 | 배틀러 알폰소는 바르셀로난 도시 Lleida를 정복했다. | |
1126 | 3월 8일 | 우라카 더 안절부절못하는 자는 살다냐 데 부르고스에서 출산 중 사망했다.레온과 카스티야의 황제 알폰소 7세는 그녀의 첫 번째 남편 부르고뉴의 레이몬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위를 계승했지만, 싸움꾼 알폰소 7세는 이전 왕국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
1127 | 배틀러 알폰소는 알모라비드의 도시 롱가레스를 정복했다. | |
6월. | 황제 알폰소와 배틀러 알폰소는 타마라 드 캄포스에서 타마라 조약에 서명했다.이 조약은 카스티야에 대한 황제 알폰소의 주권을 인정하고 카스티야와 아라곤 사이의 1054년 국경을 다시 설정했다.배틀러 알폰소는 황제의 칭호를 포기했다. | |
1129 | 4월 6일 | 포르투갈 백작인 포르투갈의 정복자 아폰소 1세가 왕자의 칭호를 받았다. |
1130 | 10월 | 바요네 공성전:배틀러 알폰소는 아마도 황제의 신하인 툴루즈 백작 알폰소 조던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아키타이인의 도시 바요네를 포위했다. |
1131 | 10월 | 배틀러 알폰소는 템플 기사단, 병원 기사단, 성묘 기사단에게 왕국을 물려주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
10월 | 바요네 공성전:배틀러 알폰소는 바요네를 정복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 |
1133 | 배틀러 알폰소는 알모라비드의 도시 메키넨자를 정복했다. | |
1134 | 7월 17일 | 프라가 전투:알모라비드는 아라곤의 프라가 포위망을 뚫었다.배틀러 알폰소가 부상을 입었다. |
9월 7일 | 배틀러 알폰소는 프라가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었다. | |
나바라 귀족들은 가르시아 산체스 3세의 사생아이자 나바라 왕인 가르시아 라미레스를 선출했다. | ||
아라곤 귀족들은 라미로 2세를 아라곤의 수도승으로 선출했다. | ||
1135 | 5월 26일 | 알폰소 황제는 임페토르 토티우스 히스파니아라는 칭호를 받았다. |
1137 | 8월 11일 | 아라곤의 라미로 수도승의 딸 페트로니야는 바르셀로나 백작 성녀 라몬 베렌게르 4세와 약혼했다.계약조건에 따라 페트로니야는 승려 라미로(Ramiro)의 후계자로 임명됐으며, 자녀 없이 사망하면 성녀 라몬 베렌게르가 모든 영토를 상속받게 된다. |
11월 13일 | 수도승 라미로는 왕위를 유지하면서도 아라곤 사람들의 왕자로 라몬 베렌게르에게 성녀 왕권을 부여하고 수도원으로 은퇴했다. | |
1138 | 7월. | 코리아 공방전(1138) :알폰소 황제는 알모라비드의 도시 코리아를 함락하는 데 실패했다.그의 지휘관 로드리고 마르티네스는 그 공격으로 죽었다. |
1139 | 4월 | 오레자 공성전: 알폰소 황제는 콜메나르 데 오레자의 알모라비드 성을 포위했다. |
7월 25일 | 아폰소는 알모라비드 영토 깊숙이 있는 알모라비드 군을 우리크 전투로 격파했다.그의 병사들은 그를 포르투갈의 왕으로 선포했다. | |
10월 | 오레자 공성전:알모라비드 수비대는 항복했다. | |
1141 | 여름 | 발데베즈 전투:아폰소는 갈리시아를 침공했다.알폰소 황제는 아르코스 데 발데베즈에서 그를 만났고 패배했다. |
1142 | 그럴지도 모른다 | 코리아 공방전(1142년):알폰소 황제는 알모라비드의 도시 코리아를 포위했다. |
6월. | 코리아 공방전(1142년):알모라비드 수비대는 항복했다. | |
1143 | 10월 5일 | 아폰소와 알폰소 황제는 스페인 사모라에서 사모라 조약을 체결했는데, 사모라 조약은 포르투갈의 독립을 인정하고 포르투갈과 레온 사이의 평화를 약속했다. |
1147 | 10월 | 제2차 십자군:알폰소 황제, 라몬 베렌게르 성자와 가르시아 라미레스는 제노아와 피사 해군의 지원을 받아 알모라비드 항구도시 알메리아를 정복했다.도시의 3분의 1은 제노바에, 나머지는 카스티야에 양도되었다. |
1151 | 알폰소 황제와 성자 라몬 베렌게르는 최근의 아라곤 정복과 무르시아의 타이파에서의 추가 정복에 대해 인정하면서 투딜렌 조약에 서명했다. | |
1157 | 알모하드 칼리프 왕국은 알메리아를 정복했다. | |
8월 16일 | 승려 라미로가 죽었어페트로니야는 그의 뒤를 이어 아라곤의 여왕이 되었다. | |
8월 21일 | 알폰소 황제는 죽었다.그의 왕국은 두 아들에게 분할되었다.장자인 카스티야의 산초 3세는 카스티야를, 젊은 레온의 페르디난드 2세는 레온을 받았다. | |
1158 | 8월 31일 | 소망의 산초는 죽었다.그의 어린 아들 카스티야의 귀족 알폰소 8세가 카스티야의 왕위를 계승했다.많은 카스티야의 귀족들이 섭정을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다. |
1162 | 8월 6일 | 라몬 베렌게르는 죽었다.그는 아라곤의 투르바두르인 그의 어린 아들 알폰소 2세에 의해 바르셀로나 백작의 자리를 승계받았다. |
1164 | 7월 18일 | 페트로니야는 아라곤의 왕위를 물려주고 그녀의 어린 아들 알폰소 1세를 위해 왕위를 물려주었다. |
1166 | 알폰소 더 체스트는 프로방스 백국을 정복했다. | |
1168 | 알폰소 더 체스트는 세르다냐를 정복했다. | |
12월 19일 | 알폰소 1세와 산초 6세는 나바라의 왕으로, 상귀사 조약에 서명하여 20년 간의 휴전과 무르시아의 타이파 분할에 동의하였다. | |
1171 | 알폰소 더 체스트는 테루엘과 카스페를 정복했다. | |
1172 | 루시용 백작 지라르 2세는 상속인 없이 죽었다.그의 나라의 귀족들은 그의 뒤를 이을 순결왕 알폰소를 선출했다. | |
1173 | 순결왕 알폰소는 프로방스 백작 라몬 베렌게르 3세에게 프로방스를 선물했다. | |
1174 | 알폰소 1세는 우클레스를 산티아고 기사단에 양도했다. | |
1177 | 9월 21일 | 카스티야는 스페인의 쿠엔카를 정복했다. |
1179 | 알폰소 1세와 알폰소 1세는 카졸라 조약에 서명하여 안달루시아 정복 지역을 정했다.아라곤은 무르시아에게 권리를 양도했다. | |
1188 | 알폰소 노블은 레온의 알폰소 9세를 레온의 왕으로 인정했다.그 대가로 알폰소 9세는 레온에 대한 카스티야의 패권을 인정했다. | |
1195 | 7월 18일 | 알라코스 전투:알모하드 칼리프 왕국은 현재의 시우다드 레알 지방에서 카스티야군을 결정적으로 물리쳤고, 스페인 톨레도로 후퇴하고 트루히요, 카세레스, 몬탄체스, 탈라베라 데 라 레이나를 할양해야 했다. |
1196 | 4월 25일 | 정숙한 알폰소가 죽었다.그는 아라곤의 카톨릭 신자인 그의 아들 피터 2세에 의해 왕위를 계승했다. |
13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209 | 알비겐 십자군: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랑그도크에서 카타르교를 박멸하기 위한 십자군 원정을 요구했다. | |
1212 | 알폰소 더 노블, 베드로 더 스트롱, 산초 7세, 나바라 왕, 나바라 왕, 그리고 프랑크 군대의 지휘관 아르노 아말릭 교황 특사가 칼라트라바 라 비에자, 알르코스, 베나벤테, 사모라를 정복했다. | |
7월 16일 |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산티아고 기사단, 칼라트라바 기사단, 템플 기사단, 프랑스와 레오나 지원병들이 합류한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 나바르세 연합군은 현재의 하엔 지방에서 알모하드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다.칼리프 무함마드 알 나시르는 강제로 도망쳤다. | |
1213 | 9월 12일 | 뮤레 전투: 가톨릭 신자 피터는 툴루즈 백작인 툴루즈 백작의 신하 레이몽 6세를 다시 세우려다 뮤레에서 전사했다.그의 군대는 패주했다.카톨릭 피터는 아라곤의 정복자였던 그의 어린 아들 제임스 1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
1214 | 10월 5일 | 알폰소 대제가 죽었습니다카스티야의 여동생 베렝가리아가 섭정을 맡은 어린 아들 앙리 1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
1217 | 6월 6일 | 헨리 1세는 지붕에서 떨어진 기와에 맞아 죽었다.베렝가리아는 그의 뒤를 이어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었다. |
8월 31일 | 베렝가리아는 카스티야의 성녀 페르디난드 3세를 위해 사임했다. | |
1224 | 알모하드 칼리프 유수프 2세, 알모하드 칼리프는 그의 애완 소들과 놀다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고레에 맞아 죽었다. | |
안달루시아의 알모하드 주지사는 칼리프 왕위 계승에 맞서기 위해 지브롤터 해협을 가로질러 그의 병력 대부분을 데려갔다. | ||
압달라 알-바이야시는 자신을 앞세워 바자의 타이파를 세우고 성자 페르디난드에게 안달루시아를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 ||
1225 | 하엔 공성전(1225):카스티야와 배자는 스페인의 하엔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 |
페르디난드 1세는 바뇨스 데 라 엔시나, 카피야, 바다호스, 살바티에라 성과의 교환으로 스페인 코르도바에 알 바야시를 설립했다. | ||
1226 | 11월 | 알-바이야시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민중 봉기로 살해되었다.카스티야는 바자를 포함한 그의 영토 일부를 합병했다. |
1229 | 9월 5일 | 메이저카 정복: 정복자 야고보는 살루, 캄브릴, 타라고나에서 마요르카까지 약 200척의 배와 2만 명의 선단을 이끌었다. |
9월 12일 | 포르토피 전투:아라곤군은 세라 데 나 부르게사에서 알모하드군을 격퇴하고 마요르카 팔마로 후퇴시켰다. | |
12월 31일 | 메이저카 정복: 정복자 제임스는 마요르카 팔마에서 알모하드 군대의 마지막 요새를 점령하고 발리 아부 야히야를 점령했다. | |
1230 | 정복자 야고보는 마요르카 정복에 참여함에 따라 마요르카 영토를 부여하는 리브레 델 리파티먼트(마조르카)를 발행했다.절반은 왕관이 되었고, 나머지는 주로 카탈로니아와 마르세유 기사들과 템플 기사들로 나뉘었다. | |
6월 24일 | 하엔 공성전(1230):페르디난드 대제는 스페인의 하엔을 포위했다. | |
9월 24일 | 알폰소 9세가 죽었다.그는 그의 아들 성 페르디난드에 의해 레온의 왕위를 계승했다. | |
9월. | 하엔 공성전(1230):알폰소 9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성 페르디난드는 스페인 하엔 포위망을 포기하고 스페인 레온의 레온 왕위에 올랐다. | |
1231 | 페르디난드 1세는 카졸라를 정복했다. | |
헤레스 전투:카스티야의 군대는 에미르 이븐 후드의 군대를 후자의 영토 깊숙이 있는 현대의 헤레즈 데 라 프론테라 근처에서 격파했다. | ||
1232 | 정복자 제임스는 메노르카를 정복했다. | |
1233 | 페르디난드 1세는 우베다를 정복했다. | |
그럴지도 모른다 | 부리아나 공성전: 정복자 야고보가 카스텔론의 보리아나를 포위했다. | |
7월. | 부리아나 공성전:도시가 함락되었다. | |
1235 | 정복자 야고보가 이비자를 정복했다. | |
1236 | 2월 7일 | 코르도바 공성전(1236년):페르디난드 더 성인은 지역 기사와 내부의 다섯 번째 칼럼니스트들의 손에 함락된 후 스페인의 코르도바에 도착했다. |
1237 | 8월 15일 | 푸이그 전투:발렌치아의 왕 자이얀 이븐 마르다니쉬는 엘 푸이그에서 아라곤 침략군을 만났고, 그곳에서 그는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
1238 | 페르디난드 1세는 우엘바를 정복하고 안달루시아의 니블라의 봉신을 얻었다. | |
9월 28일 | 정복자 야고보는 발렌시아를 점령하고 자신을 발렌시아 왕국의 왕으로 만들었다. | |
1240 | 페르디난드 1세는 에치야와 루세나를 정복했다. | |
1243 | 성 페르디난드는 오리후엘라를 사로잡고 무르시아의 봉신을 얻었다. | |
1244 | 3월 26일 | 정복자 야고보는 발렌시아와 카스티야의 국경을 확립하는 알미즈라 조약에 서명했다. |
페르디난드 1세는 스페인의 아르호나, 스페인의 물라, 그리고 스페인의 로카를 정복했다. | ||
1245 | 페르디난드 1세는 스페인의 카르타헤나를 정복했다. | |
하엔 공성전 (1245–46) :산티아고 수도회에 합류한 성 페르디난드는 스페인의 하엔을 포위했다. | ||
1246 | 2월 28일 | 하엔 공성전 (1245–46) :그라나다의 왕 무함마드 1세는 카스티야에 도시를 내주고 조공 관계에 동의했다.그는 하엔 왕국의 왕이 되었다. |
1247 | 7월. | 세비야 공성전:페르디난드 대제는 세비야를 포위했다. |
1248 | 성 페르디난드는 알리칸테의 봉신을 받았다. | |
11월 23일 | 세비야 공성전:그라나다 토후국을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인 세비야는 카스티야에 투항해 늦어도 다음 달에는 도시가 반환될 것이라고 약속했다.성 페르디난드는 자신을 세비야 왕국의 왕으로 만들었다. | |
1252 | 5월 30일 | 페르디난드 1세가 죽었다.그는 카스티야의 아들 알폰소 10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
1253 | 알폰소 대왕은 포르투갈에서 알가브를 점령했다. | |
알폰소 3세는 카스티야의 딸 베아트리스를 포르투갈 왕 아폰소 3세에게 주고, 7번째 생일에 알가르브를 맏아들에게 물려주기로 약속했다. | ||
1256 | 1월 28일 | 로마의 왕 윌리엄 2세 홀란드는 후그우드 근처에서 프리지안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1257 | 1월 15일 | 1257년 1월 제국 선거: 제1대 콘월 백작이자 푸아투 백작이자 콘월 백작인 리처드가 로마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
4월 1일 | 1257년 4월 제국 선거: 그의 할아버지 슈바벤의 필리포의 후손을 통해 작위를 주장한 알폰소 대왕은 로마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 |
현명한 알폰소 1세는 카스티야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리처드의 지배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캠페인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관세를 도입했다. | ||
1261 | 헤레스 공성전(1261년):카스티야와 그라나다는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를 포위했다. | |
헤레스 공성전(1261년):헤레즈 데 라 프론테라 시민들은 카스티야에 대한 조공금 지급을 재개하는데 동의했다. | ||
1262 | 정복자 제임스는 유언으로 마요르카 왕국을 만들었다. | |
안달루시아의 니블라는 카스티야에 합병되었다. | ||
1264 | 1264년부터 1266년까지의 무데자르 반란: 무함마드 1세의 권유로 안달루시아와 무르시아에서 무슬림의 카스티야가 반란을 일으켰다. | |
8월 8일 | 1264~1266년 무데자르의 반란: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의 카스티야 수비대 수장인 누뇨 곤살레스 데 라라는 그의 자리를 피했다.제레즈 데 라 프론테라의 알카자르가 납치되었다. | |
10월 9일 | 1264-1266년 무데자르의 반란: 카스티야 군대는 헤레스 데 라 프롱테라를 탈환했다. | |
1265 | 8월 28일 | 카스티야에서 법전인 '시에테 파르티다스'가 완성되었다. |
10월 | 무르시아 정복(1265-66) : 정복자 야고보는 무데자르 반란에 대한 카스티야의 탄압을 지지하기 위해 이슬람이 지배하는 영토에 들어갔습니다. | |
1266 | 1월 2일 | 무르시아 정복(1265-66) : 정복자 야고보가 무르시아를 포위했다. |
1월 31일 | 무르시아 정복(1265–66):머시아는 항복했다. | |
2월 26일 | 베네벤토 전투: 시칠리아 왕 만프레드는 앙주 백작 샤를 1세에 의해 왕국을 정복하던 중 살해당했다. | |
알리칸테는 카스티야에 합병되었다. | ||
1267 | 2월 16일 | 알폰소 3세와 아폰소 3세는 바다호스 조약에 서명했는데 바다호스 조약은 우정과 상호 원조 조약이었다.그 조약은 카스티야와 포르투갈 사이의 국경을 정하고 포르투갈에게 불리하게 만들었다. |
1272 | 카스티야의 귀족들은 현명한 알폰소의 잘못된 경제 운용에 반기를 들었다. | |
1275 | 에치야 전투(1275년): 그라나단 군은 마린족의 진격을 받기 위해 그들의 영토를 통과하는 카스티야 군대를 격퇴했다. | |
1276 | 7월 27일 | 정복자 제임스는 죽었다.그는 아라곤과 발렌시아의 왕이자 한 아들인 아라곤의 피터 3세, 그리고 다른 아들인 마요르카의 제임스 2세에 의해 바르셀로나 백작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
1278 | 7월. | 알헤시라스 공성전(1278~79년):카스티야는 마리니드의 항구도시 알헤시라스를 포위했다. |
7월 25일 | 알헤시라스 전투(1278년):Marinid-Grannadan 연합 함대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카스티야 해군을 격파했다. | |
1279 | 제임스 2세는 아라곤의 신하가 되기로 조약에 의해 동의했다. | |
8월 5일 | 알헤시라스 공성전(1278~79년):마리니드 군대는 지브롤터 만의 항구에서 카스티야 해군을 격파하고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군인들을 생포하여 처형했다. | |
1280 | 6월 23일 | 모클린 전투(1280년): 카스티야 군인과 산티아고 기사단의 대부분으로 구성된 군대가 습격에서 돌아오는 동안 모클린에서 그라나단 군대에 의해 전멸되었다. |
1282 | 알폰소 대제는 귀족들의 군사적 압력에 직면하여 그의 아들 카스티야의 용사 산초 4세를 후계자로 받아들여야 했다. | |
3월 30일 | 시칠리아 베스퍼: 팔레르모 근처에서 폭동이 일어나 많은 프랑스 장교들이 현지인들에게 살해당했다. | |
시칠리아 베스퍼 전쟁: 시칠리아 반군은 피터 대왕에게 앙주의 샤를 정권을 전복하고 맨프레드의 딸 아라곤의 여왕 시칠리아의 콘스탄스 왕비의 권리에 의해 통치할 것을 호소했다. | ||
1283 | 7월 8일 | 몰타 전투:아라곤 함대는 그랜드 하버에 있는 나폴리 함대를 기습하여 침몰시켰고, 그랜드 하버의 시칠리아 침공 계획은 지연되었다. |
1284 | 2월 2일 | 아라곤 십자군:교황 마르티노 4세는 피터 대왕에 대한 십자군 원정을 요청했고, 발루아 백작인 발루아 백작 샤를을 위해 아라곤에서 그를 폐위시킬 것을 선언했다. |
4월 4일 | 현명한 알폰소가 죽었어그의 유언은 그의 손자 알폰소 데 라 세르다를 레온의 후계자로 임명했지만, 용맹한 산초가 그의 뒤를 이었다. | |
6월 5일 | 나폴리만 전투:아라곤과 시칠리아 해군은 나폴리만에서 나폴리 함대를 철수시키고 앙주의 샤를과 10척의 갤리선을 생포했다. | |
1285 | 9월 4일 | 레스포르미게 전투:시칠리아-아라곤 함대는 프랑스와 제노아, 아마도 포르미게스 제도 근처를 결정적으로 격파했다. |
9월 30일 | 콜 드 파니사르 전투:아라곤 군대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후퇴하는 동안 프랑스군을 대량 학살했다. | |
11월 11일 | 피터 대제는 빌라프랑카 델 페네데스에서 죽었다.그는 아라곤의 자유주의자 알폰소 3세가 아라곤의 왕위를 계승했고, 그의 차남 아라곤의 공정왕 제임스 2세가 시칠리아의 왕위를 계승했다. | |
자유주의자 알폰소가 마요르카를 정복했다. | ||
1286 | 자유주의자 알폰소는 이비자를 정복했다. | |
1287 | 1월 17일 | 자유주의자 알폰소는 메노르카를 정복하고 마요르카 왕국에 합병하여 자치 정부를 해산시켰다. |
6월 23일 | 카운트의 전투:시칠리아-아라곤 함대는 나폴리에서 앙주군의 시칠리아 침공을 저지하며 우세한 앙주군을 물리쳤다. | |
12월 20일 | 아라곤의 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정치 조직인 아라곤 연합은 자유주의자 알폰소로부터 아라곤 귀족들에게 왕권을 이양하는 연합 특권을 얻었다. | |
1288 | 자유주의자 알폰소는 알폰소 데 라 세르다를 사티바의 요새에서 풀어주고 그를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으로 선포했다. | |
1291 | 2월 19일 | 아라곤 십자군:교황 니콜라 4세, 프랑스 철왕 필립 4세, 나폴리 왕 카를 2세, 나폴리 왕 알폰소 자유주의자가 타라스콘 조약에 서명하여 십자군 원정을 끝냈다.자유주의자 알폰소는 시칠리아에서 모든 아라곤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동의했다.그 대가로 교황은 그를 아라곤의 왕으로 인정하고 파문을 해제했다. |
6월 18일 | 자유주의자 알폰소가 죽었어요그는 정의로운 제임스 1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 |
1295 | 이즈날로즈 전투:그라나다 토후국은 카스틸리아 수비대와 칼라트라바 기사단을 이즈날로즈에서 국경을 내려다보는 요새에서 쫓아냈다. | |
4월 25일 | 용감한 산초는 스페인 톨레도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그의 어린 아들 페르디난트 4세가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위를 계승했고, 그의 아내 마리아 데 몰리나가 섭정을 맡았다. | |
6월 20일 |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정의로운 제임스, 요정 필립, 라임왕 찰스, 마요르카의 제임스 2세가 아나니 조약에 서명했다.이 조약에 따라, 정의로운 야고보는 시칠리아를 교황에게 부여했고 교황은 시칠리아를 다시 카를 3세에게 증여했고, 교황은 시칠리아를 다시 정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동의하였다. | |
시칠리아 베스퍼 전쟁:시칠리아 사람들은 아나니 조약을 거부하고 야고보의 동생 시칠리아의 프레데릭 3세를 그들의 왕으로 칭송했다. | ||
1296 | 4월 | 아라곤 군대는 알폰소 데 라 세르다의 왕위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카스티야를 침공했다. |
현명한 알폰소의 아들인 발렌시아의 영주 카스티야의 요한은 스페인 레온의 레온, 세비야, 갈리시아의 왕위에 올랐다. | ||
알폰소 데 라 세르다는 사하군에서 카스티야, 톨레도, 코르도바, 무르시아, 하엔의 왕관을 썼다. | ||
1297 | 9월 13일 | 포르투갈의 마리아 데 몰리나와 데니스는 알카니세스 조약에 서명했다.데니스는 반란군 알폰소 데 라 세르다와 카스티야의 존에 맞서 페르디난드 1세를 지지하고 그의 딸 콘스탄스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에 동의했다.그 대가로 그는 포르투갈 국경을 따라 카스티야의 영토를 받았다. |
1299 | 7월 4일 | 올랜도 곶 전투:아라곤-앙주 함대가 시칠리아 근교에서 시칠리아 해군을 격파했다. |
12월 1일 | 팔코나리아 전투:시칠리아 함대는 마르살라와 트라파니 사이의 해안에서 나폴리 해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하고 그 지휘관인 라임왕 샤를의 아들 필립 1세를 생포했다. | |
1300 | 6월 14일 | Ponza 전투(1300):아라곤-앙주 함대가 폰자 근처에서 시칠리아 함대를 격파했다. |
6월 26일 | 카스티야의 존은 왕위를 포기하고 페르디난드 1세에게 충성을 선언했다. |
14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331 | 알리칸테의 도시에서는 무어인들이 공성전을 시도했다. | |
1339 | 마드리드 조약은 마드리드에서 체결되었다. | |
1366 | 알폰소 11세의 아들 엔리케 데 트라스타마라에게 내전을 일으킨다. |
15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469 | 10월 19일 |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와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2세는 결혼하여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을 스페인으로 통일하는 토대가 되었다. |
1474 | 12월 10일 | 이사벨라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
1475 | 카스티안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되었다.Vasco Nunez de Balboa가 태어났다. | |
1478 | 스페인 종교재판소가 창설되었다. | |
1479 | 카스티안 왕위 계승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월 20일 | 페르디난드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 |
9월 4일 | 알카소바 조약에 의해 포르투갈은 카나리아 제도에 대한 스페인의 지배권을 인정했다. | |
1492 | 스페인은 미국을 정복했다 | |
레콘키스타는 끝났다. | ||
유대인들은 알함브라 법령에 의해 스페인에서 추방되었다. | ||
8월 3일 | 콜럼버스는 출항한다. | |
1493 |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 |
1494 |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 |
1499 | 1499-1504년 이탈리아 전쟁: 페르디난드는 프랑스의 루이 12세와 동맹을 맺었다. |
16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501 | 4월 | 그라나다 왕국의 이슬람교도들이 가톨릭 통치자들에 대항한 일련의 봉기인 알푸자라의 반란 (1499–1501)은 패배했다. |
1504 |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는 죽었다.그녀의 딸 카스티야의 조안나는 그녀의 아버지 페르디난드와 함께 섭정으로서 그녀의 뒤를 이었다. | |
1506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51세의 나이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
1516 | 페르디난드는 죽었다. | |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왕이 되었다. | ||
1519 | Vasco Nunez de Balboa는 죽었다. | |
1554 | 7월 25일 | 영국 여왕 메리 1세는 스페인 왕자 [1]필립과 결혼했다. |
1556 | 찰스는 스페인의 필립 2세가 된 필립에게 양위했다. | |
1557 | 상트페인트 Quentin (1557) :스페인이 전투에서 이겼다. | |
1561 | 필립은 마드리드로 법정을 옮겼다. | |
1568 | 네덜란드 반란: 네덜란드에 대한 합스부르크 지배에 대한 반란이 시작되었다.이것이 80년 전쟁을 일으켰다. | |
1571 | 10월 7일 | 레판토 전투(1571년):신성 동맹은 승리했다. |
1578 | 네덜란드 반란:반란은 끝났다. | |
1580 | 아라곤, 카스티야, 포르투갈의 왕국으로 이루어진 이베리아 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 |
1585 | 영국-스페인 전쟁(1585년):전쟁이 시작되었다.그것은 간헐적인 충돌이었다. | |
1588 | 8월 8일 | 스페인 무적함대는 영국 해협에서 패배했다. |
1598 | 9월 13일 | 필립 2세는 [2]암으로 마드리드 인근 엘 에스코리알에서 사망했다.그의 후계자는 20세의 아들 필립 3세였다. |
17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604 | 영국-스페인 전쟁(1598년):전쟁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 |
1605 | 런던 조약 (1604)은 19년간의 영국-스페인 전쟁을 평화 조건으로 종결짓는 조약에 서명되었다. | |
1609 | 4월 9일 | '모리스코 추방'이 선포되었다.모리스코 가문은 16세기 초에 기독교로 개종한 스페인 이슬람 인구의 후손이다. |
1618 | 30년 전쟁:인류 [3]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분쟁 중 하나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 |
1621 | 스페인의 필립 4세가 왕위에 [4]올랐다. | |
1640 | 포르투갈 복원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이베리아 연합은 해산되었다. | ||
1648 | 웨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었다.합스부르크의 패권은 축소되었다.스페인 제국에 의한 네덜란드 공화국의 독립 인정.네덜란드 공화국이 네덜란드 남부 및 룩셈부르크에 대한 스페인의 주권을 인정. | |
1659 | 피레네 조약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1635-1659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체결되었다.스페인은 프랑스의 플랜더스와 카탈루냐 공국의 북부 지역을 잃었다. | |
1665 | 필립 4세는 죽었다.[4]스페인 제국은 면적이 약 1220만 평방 킬로미터(470만 평방 마일)에 달했다. | |
1668 | 리스본 조약이 체결되었다.스페인은 포르투갈의 새로운 통치 왕조인 브라간자 왕가의 주권을 인정했다. | |
1675 | 스페인 제국의 마지막 합스부르크 통치자인 스페인의 찰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 |
1700 | 찰스 2세는 자식 없이 죽었다. |
18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701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761 | 7년 전쟁: 스페인은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 |
1778 | 미국 독립 전쟁: 스페인은 미국을 지지했다. | |
1789 | 이 시기 스페인은 아바나에 노예 무역을 개시했다. |
19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1801 |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에 주어졌다 | |
1806 | 영국의 리오 데 라 플라타 침공:침략이 시작되었다. | |
1807 | 영국의 리오 데 라 플라타 침공:침략은 끝났다. | |
1808 | 반도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5월 2일 | DOS de Mayo 봉기:마드리드에서 프랑스의 도시 점령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 |
1809 | 볼리비아 독립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11 | 베네수엘라 독립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12 | 1812년 스페인 헌법이 공표되었다. | |
1814 | 반도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15 | 스페인 뉴 그라나다 재탈환:재정복이 시작되었다. | |
1816 | 스페인 뉴 그라나다 재탈환:재정복이 끝났다. | |
1820 | Trienio 리버럴:생리가 시작되었다. | |
1823 | Trienio 리버럴:기간이 끝났다. | |
1824 | 볼리비아 독립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33 | 첫 번째 Carlist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39 | 첫 번째 Carlist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46 | 두 번째 Carlist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49 | 두 번째 Carlist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64 | 친차군도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66 | 친차군도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68 | 10년 전쟁: 쿠바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72 | 3차 목록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
1873 | 스페인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
1874 | 유신 중인 스페인:생리가 시작되었다. | |
스페인 제1공화국은 해체되었다. | ||
1876 | 3차 목록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78 | 10년 전쟁:전쟁은 끝났다. | |
1879 |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마드리드에서 온 술집 카사라브라에서 '파티도 소셜리스타 오브레로 에스파놀' 또는 'PSOE'를 창립했다. | |
1898 | 4월 25일 | 스페인-미국 전쟁:전쟁이 시작되었다. |
8월 12일 | 스페인-미국 전쟁:전쟁은 끝났다. |
20세기
1918 | 제1차 세계 대전: 전쟁은 끝났다. | |
1920 | 리프 전쟁(1920):전쟁이 시작되었다. | |
1926 | 리프 전쟁(1920):전쟁은 끝났다. | |
1931 | 스페인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
유신 중인 스페인:기간이 끝났다. | ||
1936 | 스페인 내전(1939년 ~ ) | |
1939 | 프랑코 통치하의 스페인:생리가 시작되었다. | |
1953 | 스페인과 미국은 마드리드 조약을 노래한다. | |
1955 | 스페인은 유엔에 가입한다. | |
1959 | 스페인의 기적:경제 성장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 |
1973 | 스페인의 기적:기간이 끝났다. | |
1975 | 스페인의 역사 (1975년 ~ 현재) | |
11월 6일 | 녹색 행진은 스페인이 마지막 남은 식민지 영토인 스페인령 사하라를 모로코에 넘겨주도록 강요했다. | |
11월 20일 |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죽었고, 왕정은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에게 돌아갔다. | |
1976 | 스페인의 민주주의 이행:이행이 시작되었습니다. | |
1978 | 1978년 스페인 헌법이 발표되었습니다. | |
1981 | 민주화 이행 후의 스페인 사회:민주주의 사회가 확립되었다. | |
2월 23일 | 23-F: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 |
1982 | 스페인은 나토에 가입한다. | |
1986 | 스페인은 유럽연합에 [5]가입했다. | |
1992 | 1992년 하계 올림픽:하계 올림픽은 [6]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 |
1997 | 스페인은 1997년 나토 정상회의를 주최한다. | |
1998 |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는 전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해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
21세기
연도 | 날짜. | 이벤트 |
---|---|---|
2004 | 3월 11일 |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로 1901명이 사망하고 2000명 이상이 부상했다.호세 마리아 아즈나르 총리는 바스크 테러리스트들의 ETA를 비난했다. |
3월 14일 |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사회노동당이 이라크에서 스페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한 후 아스나르의 국민당은 선거에서 패배했다. | |
2005 | Patrimoni Digital de Catalunya(아카이브) 설립. | |
2006 | 2006년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폭파: ETA에 의한 폭격으로 활발한 휴전과 평화 협상이 종료되었다. | |
2008 | 모로코 국적의 자말 주감은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 |
가르손은 세 건의 범죄행위로 기소되어 국제적인 스캔들과 시위를 일으켰다. | ||
스페인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우승하며 팀을 국제적인 축구 강국으로 만들었다. | ||
2010 | 스페인이 FIFA 월드컵에서 [7]우승했다. | |
가르손은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의 컨설턴트로 일할 수 있는 휴가를 받았다. | ||
2015 | 아르투르 마스는 카탈로니아 지역의 독립에 관한 조기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스페인에 대항한다. | |
2017 | 8월 17일 ~ 18일 | 2017년 바르셀로나 공격: 바르셀로나, 캄브릴, 알카나르, 수비라트는 ISIL의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
10월 1일 |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카탈루냐 의회가 카탈루냐의 자기 결정 주민 투표에 관한 법을 승인함에 따라, 카탈루냐 총국에 의해 위헌적인 독립 국민 투표가 요구되었다.9월 초 카탈로니아 고등법원은 경찰에게 그 준비에 책임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구금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
10월 27일 | 카탈로니아 독립 선언: 카탈로니아의 일방적인 독립 선언은 주민투표 결과가 찬성함에 따라 카탈로니아 의회에서 비준되었습니다.스페인은 이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헌법 155조를 적용했다. | |
10월 29일 | Carles Puigdemont는 카탈로니아의 독립을 선언한 후 스페인에서 해고된 후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도망친다. | |
2018 | 페드로 산체스는 문책동의안을 통과시킨 후 총리로 취임했다. | |
2019 | 카탈로니아 독립 지도자들에 대한 재판:2017년 카탈로니아 독립 선언 이후 수개월에 걸쳐 열린다.9명의 피고인은 선동죄와 공적자금 오용죄로 징역 9년에서 13년을 선고받았고, 다른 3명의 피고인은 불복종죄로 벌금형을 받았다.이것은 이후 독립 시민들에 의한 시위를 촉발시켰다. | |
2020 | 1월 13일 | 산체스 II 정부:이는 스페인 제2공화국 이후 스페인에서 구성된 최초의 전국적인 연립정부이다.그 정당은 스페인 사회노동자당과 우니다스 포데모스였다. |
1월 31일 | COVID-19 대유행은 스페인에서 시작되며, 라 고메라(카나리아 제도)에서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다.확인된 환자, 회복된 환자 및 사망자는 스페인의 COVID-19 대유행 링크에서 볼 수 있다. | |
2022 | 6월 28일 | 스페인은 2022년 마드리드 정상회의를 주최한다. |
레퍼런스
- ^ "RCIN 630355 – Philippus II 1555". www.royalcollection.org.uk. Retrieved 26 July 2017.
- ^ Koenigsberger, Helmut Georg (2012), Philip II,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retrieved 31 January 2012
- ^ 피터 H. 윌슨, 유럽의 비극: 30년 전쟁의 새로운 역사 (런던:펭귄, 2010), 787.
- ^ a b "Philip IV – king of Spain and Portugal". Encyclopedia Britannica. Retrieved 26 July 2017.
- ^ "Spain in the European Union: the first twenty-five years (1986–2011)". University of Pittsburgh. Retrieved 25 July 2017.
- ^ "Barcelona 1992 Olympic Games". Encyclopedia Britannica. Retrieved 25 July 2017.
- ^ "Spain win World Cup 2010". Telegraph.co.uk. Retrieved 25 July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