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수
보이기
조증수(趙增壽, ? ~ ?)는 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치공(穉公)이다.
홍가 원년(기원전 20년) 여강태수에서 좌풍익으로 승진하였고, 이듬해에 정위가 되었다.
성제는 진탕과 해만년의 제안으로 창릉(昌陵) 조성을 명하여 백성들을 이주시켰는데, 결국 능읍을 완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조증수는 일을 주도한 진탕을 탄핵하였고, 결국 진탕은 해만년과 함께 돈황으로 유배되었다.
전임 설선 |
전한의 좌풍익 기원전 20년 ~ 기원전 19년 |
후임 만검 |
전임 범연수 |
전한의 정위 기원전 19년 ~ 기원전 14년 |
후임 진경 |
태상 (봉상) | |
---|---|
광록훈 (낭중령) | |
위위 (중대부령) | |
종정 (종백) | |
태복 | |
정위 (대리) | |
대홍려 (전객, 대행령) | |
대사농 (치속내사, 대농령, 희화) | |
소부 | |
|